갈루아의 반서재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세상이 있는 듯했다. 하나는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세상이고, 또 하나는 사람들이 실제 세상이라고 착각하는 결정론적인 세상이다. 사람들이 결정론으로 치우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은 항상 필연으로 보이기 때문이다(후견지명 편향, 사후확신 편향 hindsight bias). 누군가로부터 과거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후에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짜 맞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나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지적 회의론을 보호하고 계발해야 하는 중요한 자산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단한 지식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일에 주력한다'라는 것이 나의 신조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적 확신을 중시하는 전통적 사고방식을 내다 버려야 한다. 

데카르트처럼 확실성을 추구하다가 우리는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다. 몽테뉴처럼 모호하고 비정형적이지만 중요한 판단을 하는 대신에, 데카르트처럼 정형적인 사고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생각할 여지를 없애 버렸다. 회의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수적이며, 특히 자기성찰을 통해서 자신을 직시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속기 쉬운 존재다.

교과서나 카지노 외에는 확률이 수학 문제나 난제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절대 없다. 확률은 주사위나 더 복잡한 변수로 승산을 계산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지식이 불확실함을 인정하고 무지를 다루는 방법을 개발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법을 찾기 전에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과거가 달리 진행되었다면, 세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점이 확률적 사고의 핵심이다. 

물론 운은 준비된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통념을 따른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간단한 원리를 자주 혼동한다. 성공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혼동하는 것이다. 복권방에 가서 복권을 사오는 행위 자체가 복권 당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 행위는 단지 필요조건일 뿐이다. 무작위 사건이 발생하는 세계에서는 필요조건의 중요도는 떨어진다. 

우리 두뇌는 때때로 인과관계를 거꾸로 파악한다. 훌륭한 자질 덕분에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모두 똑똑하고 근면하며 인내심이 있다고 해서, 그 반대로 똑똑하고 근면하고 인내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성공한다는 뜻은 아니다(후견 긍정의 오류 affirming the consequent). 

<백만장자 마인드>라는 멍청한 책을 쓴 저자는 1,000명이 넘는 백만장자들을 조사해보니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IQ가 높지 않았던 것으로 나왔다. 그래서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라 근면한 노력 덕분에 부자가 될 수 있었다고 추론하고 있다. 이 지침서를 읽은 사람들은 순진하게도 운이 성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백만장자들의 속성이 평균적인 사람들과 비슷하다면, 이들의 성공은 오히려 운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백만장자가 일반 대중과 다른 점은 끈기와 근면 같은 몇몇 속성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도 필요조건과 인과관계를 착각한 사례다. 끈기있고 근면한 사업가들 가운데 실패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백만장자에게는 위험 감수라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고 저자가 주장했는데 순진하기 짝이 없는 경험주의 사례일 뿐이다. 물론 그것은 성공의 중요한 요소지만, 실패에 필요한 요소도 된다. 저자가 똑같은 조사를 파산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틀림없이 이들의 파산이 위험 감수 때문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논리에는 실증이 필요없다(이른바 왕복오류 round-trip fallacy 이다. 언론인과 일부 경제학자들처럼 논리 없이 통계학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그 반대로 통계 없이 논리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행운에 속지 마라
국내도서
저자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 이건역
출판 : 중앙북스 20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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