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강의를 듣다 보면 백일몽에서 벗어나기 정말 어렵다.
1. 기여와 보상은 반비례
일반적으로 기업에서는 서열이 올라갈수록 기여도가 낮아진다.
능력 중에는 치과의사의 경우처럼 식별하기 쉬운 능력도 있고, 러시안룰렛처럼 운에 좌우되는 비중이 높아서 식별하기 어려운 능력도 있다. 능력의 가시성은 업무에서 운이 얼마나 좌우하느냐와 개인의 기여도를 얼마나 구분해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능력을 드러내는 열쇠는 반복성이다. 표본경로가 아주 길어지면 결국 서로 닮게 된다는 뜻이다(에르고딕성). 단 한 번의 룰렛에 돈을 걸어 100만 달러를 날렸다면, 원래 카지노가 유리했던 것인지 단지 내가 운이 나빴던 것인지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1달러씩 100만번을 건다면, 카지노가 유리하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흔히 대수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표본 이론의 핵심이다.
2. 운이 주는 혜택
1) 불확실성과 행복
충족을 추구하는 사람과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람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대개 충족을 추구하는 유형이다. 그는 탐욕스럽지 않기 때문에 충족할 줄 안다. 반면,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세율을 몇 %만 낮출 수 있다면 언제라도 이삿짐을 꾸리는 유형이다.
인과관계도 분명치 않다.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수준을 높이려 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인지, 아니면 불행한 사람이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운도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다.
나는 인간이 일정에 적합한 존재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인간은 소방대원처럼 살아야 한다. 화재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므로, 일이 없는 동안에는 편안하게 뒹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야 한다. 안타깝게도 본의 아니게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고급 주택가 아이들은 주말에도 시간을 쪼개 태권도와 기타를 배우고, 종교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나는 지금 알프스 산맥을 천천히 달리는 열차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
10년 전쯤 이런 결론에 도달하고 나서 자명종 시계를 치워버렸다. 지금은 내 생체 시계를 따르고 있는데 여전히 비슷한 시각에 일어난다. 내 일정이 10여분 정도 모호해지면서 생활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나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인간이 일정에 맞춰 살기 어려운 존재임을 깨달았다. 칼럼 쓰는 것과 책 쓰는 것의 차이를 인식하고 나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 책 쓰는 것은 재미있지만, 칼럼은 고통스럽다. 글 쓰는 것 자체는 외부의 제약만 없으면 재미있다. 글을 쓰는 도중 재미가 없어지면, 한 문장을 반쯤 쓰다가도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다. ..... 거듭 말하지만, 우리 조상은 개요, 일정, 마감 시간 등에 얽매여 살이 않았다.
한계상황을 생각해보면 일정이 지난 추잡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당신은 언제 죽게 될지 정확히 알고 싶은가?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고 싶은가? 차라리 영화의 상영시간조차 모르는 편이 낫지 않을까?
2) 불확실성과 정보
불확실성은 삶의 질을 개선시켜줄 뿐만 아니라 정보 면에서도 가시적인 혜택을 제공하는데, 특히 메시지가 자기 충족적이면서 파괴력이 강할 때 그렇다.
우리 행동을 어느 정도 예측하지 못하게 하면, 갈등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우리가 항상 똑같은 임계점을 기준으로 반응한다고 가정하자. 예를 들어, 일주일에 17번 모욕을 당한다면, 18번째 모욕을 당하는 순간 상대편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식으로 우리 반응이 예측 가능해지면 사람들이 이를 이용해서 임계점 직전까지만 우리를 모욕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임계점을 임의로 변경해서 때로는 아주 사소한 농담에도 과잉 반응을 보인다면, 사람들은 어느 선가지 모욕해도 좋은지 알 수가 없다. 갈등 상황을 맞이한 정부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정부는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도 때로는 과잉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상대국에 확실히 인식시켜야 한다. 과잉 반응의 강도조차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예측할 수 없게 만들면 분쟁을 강력하게 억제할 수 있다.
3. 한줄로 요약하면
남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
나머지는 모두 주석에 불과하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마음 깊이 간직한 것, 개인적인 것, 이야기 들은 것, 실체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추상적인 것을 경멸한다. 우리에게 좋은 것(미적감각, 윤리)과 나쁜 것(운에 속는어리석음)의 차이는 모두 여기서 나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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