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나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복제양 돌리의 실험처럼 양의 젖샘세포에서 핵을 빼내 다른 양의 난자에 이식했을 때 새로운 양이 탄생했다는 것은 분화한 젖샘세포에 양의 모든 유전정보가 남아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왜 정보가 같은데 피부세포는 피부세포로 고정되는걸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저는 종종 유전자를 인체 설계도에 비유합니다. 인간의 유전자는 대략 3만개 정도라고 하는데, 인간의 몸에 있는 약 60조 개의 세포가 모두 제각각 약 3만 페이지에 달하는 동일한 설계도를 가지고 있는 셈이죠. 설계도가 같은데 왜 겉모습과 기능이 다른 세포가 되는 걸까요? 그건 세포마다 읽히는 페이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세포가 어떤 세포로 분화하느냐는 설계도 가운데 어떤 페이지를 읽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거죠. 실제로는 3만 페이지 가운데 1만 페이지 정도만 읽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어떤 세포가 어떤 페이지와 어떤 페이지를 읽는가'에 따른 조합은 거의 무한에 갂바기 때문에 방대한 종류의 세포가 생성됩니다.
마스카와 ... 그런데 '이 페이지를 읽어라'하는 지령은 어떻게 내려지는 건가요?
야마나카 그 지시를 내리는 건 유전자 내부의 '전사인자'라 불리는 단백질 집합입니다. 전사인자는 DNA와 결합하여 '이 유전자를 읽어라'라고 지시하는 책갈피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아요.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책갈피를 끼워 넣어 전사인자를 작동하게 하면 세포의 성질이 변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피부세포에 MyoD 라는 전사인자를 삽입하면 근육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스카와 그러니깐 일단 분화가 끝난 세포라도 전사인자에 의해 운명이 바뀔 수 있군요.
야마나카 네, 같은 책이라도 책갈피가 꽂혀있는 페이지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있는 것과 마찬가지교. 그래서 전사인자의 중요성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후성유전학 epicgenetics 이라는 개념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전사인자라는 책갈피가 '이 페이지를 읽으시오'라고 지시하는 걸로 끝이라면 실수로 다른 페이지를 읽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실수가 생긴다면 우리 몸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실수가 없도록 읽을 필요가 없는 페이지는 검게 색칠해 버리는데, 이것이 후성유전적 조절입니다. 예를 들어 피부로 분화한 세포의 DNA 설계도에서 장과 관련된 페이지를 읽기 위해 책장을 펼쳤다고 해보죠. 하지만 그 페이지는 검게 칠해져 있기 때문에 읽을래야 읽을 수가 없죠.
야마나카 ... 설계도에 적힌 것은 단 한 글자, 한 구절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유전자의 배열은 바뀌지 않는 거지요. 하지만 페이지에 칠해진 색이 검정, 빨강, 혹은 파랑 등 다양하기 때문에 색에 따라 유전자를 해독할 수 있는 난이도가 조절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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