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irl in Shadow by alubavin
15세의 주인공에 대하여 (2)
주인공을 15세 소년으로 설정함으로 당연히 문체도 달라집니다. 이를테면 15세 소년은 그다지 훌륭한 비유를 쓰지는 못해요.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궁지라고도 할 만한 데서 빠듯하게 살고 있으니까, 문체도 따라서 크리스프(crisp)해지지요. 이야기를 유효하게 서바이브(survive)하기 위한 문장으로 되어 가는 거에요. 안 그럴 수가 없어요. 정교한 레토릭도 필요가 없게 되지요. 물론 문장은 꽤 주의 깊게 고쳐 썼는데 고치면 고칠수록 심플(simple)해지더군요. 그런 점이 지금까지의 제 문체와 다른 것으로 나타났을 지도 몰라요.
제가 특히 신경을 쓴 것은 15세 소년이 나온다고 해서 계몽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어요. 그를 인도해 준다든가, 그런 짓은 하지 않으려고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그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 자기 머리로 판단하게 하는 것. 작자가 그를 인도해서는 안 돼요. 여러 가지 원형의 모습을 그에게 보여 주고 그것을 그가 스스로 이해하고 삼기고 받아들이게 해 주는 것. 그것이 작자에게 주어진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실무 언어적인 수준에서 말하면, 그가 쓰는 말들 중에서 되도록 "**적"이라는 표현을 근절해 버리고 싶었어요. 그러한 표현을 없애 버리고 더 솔직하고 더 자연스러운 말투로 하고 싶었던 거에요. 실제로는 유감스럽게도 근절하지는 못했고 아직 조금은 남아 있는데(웃음), 그래도 아주 적어졌어요. 역설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 중에는 "**적"이라는 표현이 너무나 많다는 거지요. 조심해야 한다 싶었어요.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주인공인 소년이 쓰는 말을 "이건 15세 아이가 쓰는 말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몰라요. 그런 비판은 아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나는 말이에요, 그에게 소위 "15세 아이적인"말투를 바라지는 않았던 게에요. 그에게는, 말하자면 어떤 부분에서 메타피지컬한(metaphysical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가진 15세의 소년이기를 바랬어요. 책 안에 나오는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세계에서 제일 터프한 15세 소년"이기를 바란 거에요. 거기에는 예전에 <자본론>과 <악령>을 몰투하게 읽는 15세 소년이었던 저의 생활 자세 같은 것도 겹쳐져 있을 지도 몰라요. 그런 말투, 문체의 설정은 어려웠군요. 몇 번인가 전체의 톤(tone)을 변경했어요. 제일 신경을 쓴 것은 그런 부분이었을 지도 몰라요.
저는 지금 마침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새롭게 번역하고 있는데 그 역문의 톤 설정도 신경이 쓰여지는군요. 홀든 고울필드 군은 16세인데, <해변의 카프카>의 소년과는 다른 의미로 아주 어려워요. 어디까지가 소년의 부분이고 어디부터가 어른의 부분인지, 그 구분이 미묘한 거에요. 그만큼 보람도 많은 일이지만요.
Q. 현대의 15세 소년 소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젊은 사람에게 삶의 원형 같은 것을 순수한 형태로 제시해 간다는 작업의 중요성은 현실 세계에서도 픽션의 세계에서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일상적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부모가 자신들의 원형을 뚜렷한 형태로 아이들에게 보여 준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지요. 일상이란 것은 왕왕 여러 가지 때나 얽매임으로 사물의 이미지를 탁하게 만들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15세 쯤이면 마침 반항기에 이르고 있어서, 부모의 존재에 대해 반발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니까 그리 쉽게 받아들여 주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이계와의 접점 같은 것이 중요하게 되리라고 저는 생각해요. 돌연히 의미 불명한 것이 나타난다든가... 이를테면, 브라질에서 "토라 상"(역주: 일본 영화 <男はつらいよ[남자는 괴로워]>에 나오는 주인공 아저씨) 같은 삼촌이 돌연히 찾아와 주변을 마구 휘둘러 댔다가 또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다든가(웃음), 그런 것 말이에요. 그러나 그런 일은 실제로는 흔히 일어나지 않아요. 그래서 독서라는 것이 중요한 거지요. 책을 읽고 있으면 제법 많은 이계와의 리얼한 접촉이 있거든요. 저의 경우도 그랬어요.
Q. 나카타 씨라든가 호시노 군이라든가, 그러한 타입의 사람은 지금까지 하루키 씨 인생에는 나타났었나요?
A. 특별히 없었군요. 하지만 일반론을 말하면, 인간 안에서는 "본래 그래야 했던 것"같은 제2의 자신이 숨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것도 원형의 일종이라고 말해도 좋을 건데, 가만히 진지하게 상대를 보고 있으면 그런 이미지가 조금씩조금씩 떠올라요. 그것도 제가 <언더 그라운드>의 취재를 통해서 배운 것이었어요. 상대방의 인격 안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제2의 인격과 같은 것을 찾아낸다는 것.
저는 <언더 그라운드>의 취재를 할 때 몇 가지 룰을 정했는데, "인터뷰하는 상대를 무조건 좋아한다"는 것도 그 룰 중 하나였어요. 일단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진짜로 좋아하게 되는 법이에요. 물론 오래 사귀려면 아마 그렇게 쉽게는 안 될 거에요. 하지만 인터뷰하는 동안의 2시간 내시 3시간 쯤이면 어떤 사람이라도 좋아할 수 있어요. 우선 이쪽이 상대를 좋아하지 않으면 상대도 정직하게 말을 해 주지 않거든요. 그런 거에요. 그리고 좋아한다는 것은 상대 속에 있는 "좋은 원형"을 찾아내는 것이에요.
제가 나카타 상이나 호시노 군을 소설적으로 조금이나마 리얼하게 쓸 수 있었다면, 그것은 제가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을 진지하게 봐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한 것은 요컨대 나카타 상적인 것에 대해 살을 붙여 주고, 호시노 군적인 것에 대해 살을 붙여준 것 뿐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만들어냈다고 하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어딘가에서 찾아내서 갖고 왔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에요. 물론 소설적으로 찾아낸다는 것은 즉 만들어낸다 그 말이지만요.
Some days are very good days for some things . . . by Earl - What I Saw 2.0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해변의 카프카>
Q. 이 소설에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따로따로 시작되고, 각각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면서 종반이 가까워짐에 따라 끔찍한 전개가 되어가는데, 처음에 설계와 같은 것이 있었나요?
A. 아니요, 그 따위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저 몇 가지 이야기를 동시적으로 쓰기 시작해서, 그것이 각각 제멋대로 진행되어 가는 것 뿐이에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인지, 몇 가지 이야기 어떻게 결부될 것인지, 그 따위 것은 저 자신도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이야기적으로 말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도 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단, 쓰기 시작할 때, "숲에 대해서는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것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이미지에서 계속되는 것으로서요. 그러니까 숲 속의 세계가 나온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던 것은 그 정도였지요. 나머지 일은 뭐, 되는 대로 되리라고.
원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속편 같은 것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소설의 종반에서 숲에 들어가던 사람들의 그 후의 일이 저 자신도 궁금했으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러나 구체적으로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쓴 지도 15년 넘게 지났거든요. 그래서 전혀 다른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역시 숲의 이미지만은 그려 보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은 제법 간절했던 것 같아요.
Q. 홀수 장과 짝수 장은 번갈아 쓰셨나요? 아니면 홀수 장은 홀수 장만 어느 정도 계속해서 쓰고... 라는 그런 식으로 쓰셨나요.
A. 홀수와 짝수는 어김없이 번갈아 썼어요. 그러니까 독자가 그 소설을 읽을 때와 똑같은 차례로 저도 그것을 쓴 거에요. 그러지 않으면 소설의 자연스러운 리듬이 생기지 않거든요. 물론 나중에 고쳐 쓰고, 보태어 쓰고, 갈아 넣고, 사실관계를 맞추기는 해요. 그것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작품이 안 되니까. 예를들면, 두 개 있는 "까마귀라고 불리는 소년"의 독립된 장은 나중에 보태어 쓴 거에요. 처음의 원고에는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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