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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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이란, 자기 몸과 마주하는 일


기공은 몸을 움직이거나, 기를 내보내거나, 기를 느끼는 감각을 통해 “내 몸과 마주하는 행위”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죠.

“기를 흘렸더니 손바닥이 따끔따끔했어요.”
“기공을 하니까 하품이 계속 나왔어요.”
“기공을 하고 나니까 머리가 아팠어요.”
“이게 기인가… 싶은 따뜻함이 손에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어요.”

기공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면, 사실 이 정도 느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삼화기공에서는, 이렇게 기공을 해서 의식 위로 떠오른 것들을 말로 정리하는 것, 즉 깨달음을 언어화하는 것을 “피드백을 받는다(フィードバックをとる)”라고 부른다다. 이 피드백을 많이 하면 할수록 ‘아 이게 이런 거였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능력이 올라가고,
몸으로 느꼈던 체감을 더 세밀하게 의식 위로 올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삼화기공에서는 매 레슨의 시작이 이렇게 열린다.

“지난번부터 오늘까지 기공을 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나요?”
“무엇을 느꼈나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이렇게 먼저 물어보고, 그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부터 수업을 시작한다. 즉, ‘피드백을 받는 일’이 곧 수업의 출발점인 셈이다. 기공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마주해서,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걸 알아차리고,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걸 느끼게 되는 것, 이게 정말 중요하다. 이때 “이렇게 느껴야 정답이다” 같은 규칙은 없다. “이건 그냥 내 착각인가…?” 싶은 것조차 제대로 의식 위로 올려보는 게 중요하다. 대단한 경험일 필요도 없고, 사소한 거라도 괜찮다.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의의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 즉 무의식을 의식으로 올리는 것은 그 사람의 ‘현실 인식’에 작은 흔들림을 일으키는 일이다. 우리가 “이게 현실이야” 하고 믿고 있던 세계에 아주 미묘하면서도 강렬한 위화감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현실은 사실 우리의 ‘내부 표상’(internal representation), 즉 내 안에 있는 세계 그대로이다. 무의식 레벨에서 “이게 중요하다”고 믿은 정보만으로 현실이 구성돼 있다. 

그러니까 ‘아, 이런 면도 있네’ 하고 알아차리는 것은 내부 세계에 돌을 하나 던지는 것과 같다. 물결이 퍼져나가듯이, 그 사람의 현실 인식에 파장이 일어나게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시골에서 상경해서 도쿄에서 살고 있다고 해보자. 그 사람은 “도쿄 같은 대도시는 위험하고, 어떤 사람이 있는지 모르니까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 돼”라는 전제를 갖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람의 눈에는 도쿄 사람들의 말투가 어디선가 차갑고, 행동도 서늘해 보이고, 뉴스에서도 도쿄에서 일어나는 범죄 소식만 유독 잘 들리게 된다. 그렇게 해서 “도쿄는 삭막하고, 사람은 믿을 수 없다.” 라는 신념을 더 강화해 버리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지갑을 떨어뜨렸는데 어떤 청년이 “떨어뜨리셨어요” 하고 밝은 얼굴로 그 지갑을 건네준다. 그 순간 그 사람은 생각한다. “도쿄 사람도 이렇게 다정할 수 있네.”, “이렇게 맑은 얼굴을 한 사람이 있네.” 그 딱 한 번의 경험으로 그 사람의 현실 인식이 흔들리게 된다. 그때부터는 “도쿄는 위험하고 차갑다”는 세계만을 더 이상 100%로 믿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올려서 신념이 조금씩 다시 써지는 과정”이다. 

기공을 한다는 건 바로 이걸 의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는 것인 셈이다.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현실 인식에 작은 틈’을 내고, 그 사람의 신념, 셀프이미지, 무의식의 구조를 조금씩 다시 써 내려가는 일인 것이다. 



“의식적으로 애쓴다고 해서” 바뀌는 건 많지 않다

 

우리의 행동과 판단,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을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건 무의식이다. 겉으로는 “내가 생각해서 결정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거의 자동이다. 예를 들어 “음… 오늘은 홍차 말고 커피로 할까?” 하고 고민 끝에 커피를 골랐다고 해도
그건 사실 무의식이 그 선택을 밀어준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열심히 해서’ 바꿀 수 있는 건 사실 생각보다 별로 없다.”

병을 고치겠다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매일 빠짐없이 영양제를 먹고 목표를 위해 야근을 하고 세미나를 들으러 다니는 건 물론 다 중요하다.

그런데 ‘사는 목적’과 ‘자기 자신에 대한 깨달음’ 없이 그냥 열심히만 하고 있으면 사실은 아무데도 안 가고 있는 경우가 정말 많다. 그래서 지금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올려서 내가 믿고 있던 현실을 살짝 흔들어보는 것, 그리고 그걸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관찰 → 피드백 → 다시 기공

이 단순한 반복이 현실을 바꾼다. 해야 할 일은 사실 아주 단순하다.

1. 배운 기공을 해본다.
2. 그때 몸에서 일어난 사소한 감각, 변화, 느낌을 말로 적어본다.
3. “이게 기인가…?” 싶은 것도 그냥 올린다.
4. 다시 기공을 한다.
5. 또 관찰한다.

이걸 하다 보면 몸에서도, 마음에서도 “아 이게 이런 거였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들이 계속 올라온다. 그걸 몇 달, 반년, 1년… 이렇게 반복하다가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면 예전엔 그렇게나 문제 같던 게 이제는 문제가 아니고, 마음을 다 차지하던 일이 이제는 시시하게 느껴지고, 사람 관계가 부드러워져 있고, 직장이 바뀌어 있고, 체력이 붙어 있고, 그런 “조용한 변화”가 와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 변화는 대개 “아 맞다, 생각해보니… 그때 이후로 좀 달라졌네.” 이 정도의 감각으로,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변하는 중에는 본인이 잘 못 느낀다. 하지만 6개월, 1년 단위로 보면 “아, 내가 보는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네” 하고 알게 됩니다. 다른 시점으로, 다른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다.  요지는 “기공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어려운 게 아니라, ‘지금 여기 내 몸을 느끼고 기록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라는 점이다. 

 

 

출처
본 글은 일본 삼화기공(三和氣功) 공식 사이트에 게시된 글을 개인 학습 및 이해를 목적으로 번역·요약한 내용입니다.

원문 출처: https://sanwa-kikou.com/kikou2/

(저자: 馬明香 / Sanwa Ki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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