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순간 마음의 눈은 자동적으로 공간을 보게 된다. 육안은 사물을 보고 마음의 눈은 공간을 보게 되는 원리이다. 그러면서 공간을 가만히 들여다 보자. 공간에 어떤 생각이 떠 있을까? 그러면 시끄러웠던 생각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공간의 고요한 주파수와 점점 동조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이 고요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공간은 점점 넓어진다. 그러면서 마음은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상태가 된다. 무한한 공간이 바로 내 마음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우리 마음 속에 상처가 쌓이는 가장 큰 원인은 나를 둘러싼 공간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내가 필름 속에 들어있으면 필름을 바꿀 수 없다. 내가 필름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되면 나 스스로 필름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필름 속에 있지 말고 필름 밖으로 나가야 한다.
생각은 곧 필름이고, 필름은 곧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품고 있는 생각을 놓아주는 것이 곧 필름 밖으로 나오는 길이다. 부정적 감정은 거부하는 마음에서 온다. 그러니 거부하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프로그램을 다시 깔 수 없다. 프로그램을 다시 깔아야 내 현실이 바뀌는데, 나는 지금 프로그램을 바꿀 권한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다.
몸의 공간보다 몇 십배나 더 넓은 공간에 빛이 퍼져 있다. 그리고 여러 겹의 공간이 층을 이루고 있다. 그러면 왜 이런 층이 생기는 것일까? 그건 공간마다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질인 몸과 가까워질수록 물질 주파수가 지배한다. 그래서 몸에 붙어있는 두뇌는 만물을 단단한 물질로 인식하게 된다. 이 주파수는 느리고 무겁다. 거꾸로 몸에서 멀어질수록 주파수는 빠르고 가볍다. 점점 고요해진다. 몸에서 완전히 멀어지면 완전한 고요함이 찾아온다. 그 고요함 속에서 만물이 만들어진다. 나를 둘러싼 공간이 바로 내 마음이다. 나는 그 마음의 공간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감정과 생각의 공간은 내 영혼이 품고 있는 상처 보따리이다. 이 보따리에 담긴 모든 생각과 감정을 풀어서 무한한 공간에 놓아주는 것이 비로소 나를 옭아매왔던 아픔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무한한 공간은 무한하기 때문에 아무리 큰 시련도, 아무리 많은 생채기도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다. 이 무한한 공간에 모든 두려움과 억울함과 슬픔과 분노를 있는 그대로 놓아주세요.
왜 우리는 우리 인생이 이미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정해지지 않았다고 믿는 거이다. 그래서 인생은 늘 가시밭길이고 불안하고 두렵다.
각본은 생각으로 쓰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각본이 바뀌고, 각본이 바뀌면 영화도 바뀐다.
사람은 생각의 감옥에 갇혀있다. 우리가 평화에 이르는 길은 마음의 공간을 넓혀서 갇혀있는 생각들을 탈출시키는 것이다. 물을 잔뜩 채운 양동이를 든 채 이리저리 걸어보라. 거친 물결이 일어난다. 그 양동이 물을 고요한 호수에 부으면 어떻게 될까? 거친 물결은 점점 호수의 고요한 물결과 합쳐서 잔잔해진다. 거친 주파수가 고요한 주파수와 동조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을 양동이만큼 작은 공간에 가둬놓고 살면 세파에 이리저리 시달릴 때마다 거친 물결이 인다. 그래서 상처가 나고 아픈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이 떠오른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공간에서 떠오른다'는 뜻이다. 생각이 떠오르는 공간을 가만히 바라보라.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나?
억눌린 자아들은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을 작은 공간에 무지막지하게 가둬놓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은 점점 독기를 품지 않겠어요? 억눌린 자아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점점 더 독해지고 강해지려한다. 그러면서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예컨대 내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면 내 마음속에는 무책임한 자아가 억눌러있고, 이 억눌린 자아가 무책임한 다른 사람을 내 주변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억눌린 자아도 생각 에너리 덩어리라 파동을 발생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미그달라에겐 내 몸이 경계선이다. 그리고 내 몸을 벗어난 건 무조건 경계의 대상이다.
상처를 건드리면 아프다. 하지만 건드리지 않으면 치유할 수 없다. 내가 품었던 생각이 나가 아닌 걸 알아차리는 순간 그 생각은 나와 분리돼 사라진다. 그리고 진정한 나는 생각이 아니라 무한한 공간에 흐르는 무한한 마음임을 깨다는다. 이렇게 내 마음속의 생각을 하나하나 놓아주어야 백지 같은 마음 상태가 된다. 그럼 나는 생각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백지 위에 내게 필요한 생각을 자유로이 그려넣을 수 있는 진정한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물질 세계는 생각으로 가려진 어둠의 세계다. 생각 자체가 시한부이기 때문에 생각이 만들어낸 모든 것도 시한부 인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슬픔과 상처가 생긴다. 빛의 세계는 슬픔과 상처에서 벗어난 사랑과 치유의 세계다. 사랑은 모든 것을 치유하고 새로 태어나게 한다.
내 몸은 나의 경계선이 아니다. 나의 경계선은 내가 상상하는대로 끝도 없이 넓어지는 무한한 마음이다.
|
'반서재 Antilibr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앨런 피즈, 바바라 피즈, <앤서> - 인생은 익숙한 영역의 끝에서 시작된다. (0) | 2017.03.26 |
---|---|
가바사와 시온 <외우지 않는 기억술> - 언어화와 아웃풋, 기억에서 중요한 것은 관련성, 장소 세포, 그리고 역 자이가르니크 효과 (0) | 2017.03.26 |
니시지마 도모히로, <생각의 스위치> (0) | 2016.12.06 |
호리에 다카후미, <진심으로 산다> - 변명하는 놈은 떠나라 (0) | 2016.12.06 |
2016년 74번째 책 (6/23~7/5) - 고코로야 진노스케, <평생 돈에 구애받지 않는 법> (0) | 2016.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