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說中的泡泡襪女高生 by 回不去的都叫過去 |
by *嘟嘟嘟* |
<태엽감는 새>부터 <해변의 카프카>까지
Q. <해변의 카프카>는 <태엽감는 새> 이래의 긴 소설이군요.
<태엽감는 새>를 다 썼을 때, 아무튼 자신 속에 있었던 소설적인 것을 all out로 다 내버린 느낌이었어요. 4년쯤이나 들여서 계속 긴 이야기를 쓰고 있었으니까요. 4년은 길었다. 그 동안 계속 미국에 살았거든요.
녹초가 되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후에 몇 개인가 단편 소설은 썼지만 장편 소설을 쓰려는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어요. 그 다음에 <언더 그라운드>를 쓰게 되는데, <언더 그라운드>는 논 픽션이랄까, 요컨대 받아쓰기이니까, 타인의 이야기를 채집하는 작업인 거에요. 척척 들이쉬어 가는 작업 말이지요. 그에 대해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때까지 담아둔 것을 내뺕는 작업이에요. 그런 의미에서는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었던 셈이에요. 1년간 들여서 되도록 뒤에 물러서서 자신의 숨을 죽이며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려, 그것을 자신 속에 쌓아 갔어요.
그러나, 자신 속에 일단 거두어들인 것을 소설의 형태로 잘 변환시키고 밖으로 내놓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역시 시간이 걸리는 거에요. 그렇게 쉽게, 쑥 나오는 것이 아니에요. 쌓을 수 있을 만큼 쌓아 놓고는, 새가 알을 지키듯 꽉 품고 있어야 해요. 체험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의미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 시간은 길어지지요. 꾹 참아서 기다리고 있어야 해요.
<언더 그라운드>를 쓰고 나서 조금 지나다가, 어떻게든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스프트니크의 연인>을 썼어요. 저는 아무래도 소설가라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소설이 쓰고 싶어지는 거에요. 댐에 물이 괴는 듯한 느낌이에요. 하지만 그 시점에서는 아직 <언더 그라운드>의 작업을 하는 동안에 제가 intake한 것을 제대로 output하기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저 자신도 알고 있었어요. "나는 아직 중간 지점에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래서 저로서는 <스프트니크의 연인>에서는 다음에 쓸 장편 소설을 위한 준비 같은 것을 해 놓으려고 생각 한 거에요. 야구로 말한다면, 샤프한 단타를 노리려고요. 장타를 노리는 것이 아니고 말이지요. 저는 그것을 위해서, 우선 문체의 정비를 해 보고 싶었어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때까지 제가 써 온 문체의 전체적인 복습 같은 것을 여기서 철저하게 해버리자고요. 그런 실험적인 것을 하기에는 그 정도 길이의 소설이 절호의 장소예요. 저는 "중편 소설"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단편이면 용기로서 너무 짧다, 하지만 본격적인 장편까지는 끌어가지 못한다, 그런 길이지요. 그러니까 그 <스프트니크의 연인>이라는 소설은 이야기라는 차원에서 보기 전에 문체의 쇼케이스 같은 것이 되어 있어요. 문체의 문제를 어디까지나 추구해 간 결과 이런 이야기가 됐습니다.
그 같은 소설을 쓰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어려웠어요. 그때까지 제가 써 온 문체를 전부 다 활동시켜서 쓴 것 같은 부분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쓰면서 "이런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했어요. 다음은 다른 것을 해야 한다고요. 그런 의미에서는 <스프트니크의 연인>은 위치적으로는 <댄스 댄스 댄스>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어요. <댄스 댄스 댄스>를 쓴 후에 저는 <댄스 댄스 댄스>적인 것은 쓰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그 후 또 조금 지나서, 이번엔 통합적인 단편을 써 보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지요. 거기에서도 제가 가장 의식한 것은 문체의 문제였어요. 이번엔 모두 삼인칭으로, 여러가지 문체로, 한 가지 테마로, 각각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써 보기로 했어요. 그것을 하나로 통합해서 "콘셉트 앨범" 같은 것으로 만들려고요. 저는 그때까지 대개의 소설을 일인칭으로 써 왔기 때문에 삼인칭의 경험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도 아무튼 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냐면, 여러가지의 보이스가 썪은 장편 소설을 앞으로 쓰려면은 삼인칭을 유효하게 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일인칭만으로도 그런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해요. 그런 것은 순수하게 테크닉의 문제니까. 하지만 소설의 스케일을 한층 더 크게 하기 위해서는 보이스의 다양화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문제였어요.
그런 기분이 된 것은 역시 <언더 그라운드>를 쓴 영향이 컸을 거에요. 그 일을 한 후, 한참 지나서부터도 여러 사람들의 보이스가 제 머리 속에서 계속 울리고 았어서, 존재감 같은 것이 제법 컸거든요. 아주 리얼하고 절박한 것이었어요. 저로서는 그러한 살갗의 감각을 소중히 하고 싶었어요. 그것이 제가 자신의 글을 어떤 차원에서는 개조하려고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여러가지 의미에서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는 <언더 그라운드>의 연장선 상에 있어요. <언더 그라운드>에서 주제로 한 지하철 사린 사건은 1995년 3월에 일어난 일이고,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의 테마가 되어 있는 코베(神戶)의 지진은 그 2 개월 전에 일어난 일이지요.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에 수록된 6 개의 단편 소설은 그 중간 지점인 1995년 2월에 일어난 일들을 그리고 있어요. 물론 그것은 의식적으로 한 거에요. "중간 지점"이라는 것은 제게 있어서 아주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요. 영어로 하면 "limbo"지요. 현세(現世)와 황천(黃泉)의 세계 사이에 있는 중간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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