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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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 = 액자의 틀

액자의 틀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세계를 통째로 잘못 볼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액자의 틀과 '액자의 틀이 아닌 것'을 올바르게 구분한다는 것이 인간에게는 지극히 긴급성을 띈 생물적 과제입니다. 

요로 다케시 선생의 가르침에 따르면 교회나 극장이 비정상적으로 호화로운 이유는 해당 건축물이 '액자의 틀' 같은 기능을 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안에서 말하는 것은 현실 생활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니까 헷갈리지 않도록 해." 이렇게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일부러 건축물 자체를 비현실적이고 비실용적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허구의 세계에 깊이 납치당해 가슴을 쿵쾅거리면서도 그것을 현실이라고 오해하는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액자의 틀'이 필요합니다. 


181 만인을 향한 메시지는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을 때 인간은 선택적으로 주의력을 집중시키거나 떨어뜨린다는 말을 했는데, 그것은 사실 '중요한 이야기만큼은 흘려듣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들어도 듣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을 선택적으로 배제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자의 메시지를 간단하게 수신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타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습니다. 

남에게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고 싶다면, 검열의 눈을 피하는 '손수레' 모양으로 발신해야 합니다. 메타 메시지의 형태를 취하면 인간은 메시지의 수신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일 수도 없습니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우크시스Zeuxis와 파라시오스Parrhasios 

그림이 지나치게 사실적이었기 때문에 새가 날아와 그림 속 포도를 따 먹으려고 할 정도였습니다.그림의 완성도에 만족한 제우크시는 한껏 가슴이 부풀어 "자, 이제 자네 차례일세." 하고 파라시오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파라시오스가 벽에 그린 그림에는 보자기가 덮여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우크시스는 "보자기를 벗기게."하고 재촉했습니다. 그 순간 승부가 가려졌습니다. 왜냐하면 파라시오스는 벽 위에 '보자기 그림'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자크 라캉은 이렇게 말합니다.

파라시오스의 예가 밝히고 있는 바는 이렇습니다. 인간을 속이려고 한다면 보여주어야 할 것은 보자기로서의 회화, 즉 저편을 보여주지 않는 무엇인가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수신자가 괜한 해석을 덧붙이는 일 없이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저편을 보여주지 않는 무엇인가', 즉 '손수레'나 '액자의 틀'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파라시오스가 그린 보자기 그림에 대해서 기법의 교묘함이나 치졸함, 화풍, 주제, 심미적 주장 같은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적으로 '보자기 그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림만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정확함으로 수신됩니다. 


190 콘텐츠는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전해진다

갓난아기가 언어를 획득하는 과정의 기점은 '기호'라는 개념이 아니라 '수신자'라는 개념입니다. 생각하건대 '언어'라는 개념조차 없는 갓난아기가 단기간에 모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거의 기적에 가깝습니다. 이 기적은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라도 '자기 앞으로 왔다'는 것만큼은 갓난아기가 선험적으로 직감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착각에 의해 진리가 자기에게만 개별적으로 나타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인간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나 '들은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나밖에 모르는, 어떤 개인적인 메시지가 내 앞으로 송신되었다'는 예비적인 마음가짐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 메시지를 수신하고 그 부탁에 부응할 수 있는 인간은 세계에서 나 혼자뿐이라는 '선택' 의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메시지를 수신한 것은 당신 혼자뿐이라고, 그런 이상 이 메시지가 지시하는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것도 세상에 당신 혼자뿐이라고, 자기 앞으로 온 메시지는 그렇게 말합니다. 그 때 수신자는 '내가 존재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본 것처럼 착각한' 메시지는 '당신은 존재한다'와 '당신이 존재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두 종류의 언명을 전해줍니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국내도서
저자 : 우치다 다쓰루 / 김경원(KimKyoungwon)역
출판 : 원더박스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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