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251 신체를 매개로 삼으면 이해는 나아진다

경험적으로 확실한 점은 신체를 매개로 삼으면 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목소리를 내어 읽거나 '베껴 쓰기'를 하는 등 신체를 사용하면 뇌의 재조직화에 눈에 띄게 속도가 붙습니다. 신체를 매개시키면 시킬수록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막상 번역을 시작했지만 몇 페이지를 번역해도 내가 번역해놓은 일본어가 전혀 뜻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매일 거르지 않고 번역했습니다. 거의 베껴 쓰는 수준이었지요. 그렇게 몇 주일 동안 금욕적으로 작업을 계속하다보니 어느 날 '호흡이 맞는다'는 느낌이 옵니다. 문장의 끝을 예감하고 '슬슬 문장이 끝나겠군.'하고 생각하는 순간 마침표가 찍혀 있는 것을 봅니다. 어떤 명사가 나올 때는 '이 명사에는 레비나스 선생이 좋아하는 이런 형용사가 붙겠군'하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그 형용사가 나옵니다. 시작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미지의 사상이나 감각에 접근하는 방법은 결국 그것밖에 없습니다. 신체의 동기화 말입니다.

신체가 동기화하면 자신의 신체 안에서 자기도 몰랐던 감각이 생겨납니다. 그것이 '내 몸 안에서 일어난 사건인 이상 언어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의 신체에 제대로 반응을 일으키는 일본어가 아니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실마리는 그것 뿐입니다. 지성의 수준이나 스케일을 뛰어넘는 앎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바란다면, 어떻게든 '가슴이 답답한' 영역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것은 발생적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이가 언어를 획득해가는 과정은 실로 '가슴이 답답한' 상태의 연속일 테니까요.


254 끊임없는 불균형으로부터 언어는 생겨난다

먼저 언어가 있고 그것을 습득합니다. 이미지를 동반하지 않는 용법, 신체적인 실감이 뒷받침되지 않은 말을 먼저 외웁니다. 가슴이 답답한 일이겠지요. 담을 그릇만 있고 내용물이 없으니까요. 따라서 신체적인 실감이 없는 말은 대개 언제나 뇌 속 책상위에 놓여 있습니다. 신경이 쓰이니까요. 그리고 무의식중에 그것에 맞는 내용물을 찾습니다. 무언가 미지의 것을 볼 때마다 이것이 어쩌면 '언어만 알고 실물을 모르는 그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우선 용법이 선행하면 그것을 메워주는 신체적 실감을 찾으면서 살아갑니다. 


256 독창성 신화라는 병

창조적인 언어활동이란 타인의 용법을 모방하지 않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척 위험한 선택입니다. 우리의 언어 자원은 타자의 언어를 받아들임으로써만 풍요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선행하는 타자의 언어를 습득하고 그것을 내면화하여 용법에 맞는 신체 실감을 분절하는 형태로만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은 풍부해집니다.

타인의 언어를 모방하는 것을 떳떳하지 못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현실감 있는 신체적 실감을 (아무리 빈약하다고 해도) 자신이 가진 어휘만으로 표현하고 싶고, 그것이 '순수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언어 이데올로기에 이해 일본인의 언어자원은 무서울 만큼 가난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신체적 실감을 중시한 나머지 용법의 확대나 정밀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261 언어는 도구가 아니다

외국어 학습의 의의는 원래 자신의 종족이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이나 존재하지 않는 감정, 알지 못하는 세계의 관점을 다른 언어 집단으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외국어는 애초에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외국어는 자기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자기를 외부로 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부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배우는 것입닏. 

이해할 수 업는 말, 자기 신체 안에 대응할 것이 없는 개념이나 감정을 접하는 것, 그것이 외국어를 배우는 가장 훌륭한 의의라고 생각합니다. 물을 뒤집어쓰듯 '다른 말'의 세례를 받는 동안 어느새 모어의 어휘에는 없고 외국어에만 존재하는 말에 자기 신체가 동화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발 딛고 선 곳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입니다. 외국어의 습득이란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을 경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리적인 이유로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아무리 어휘가 늘어나고 발음이 좋아져도 자신이 갇힌 우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즐거움'이나 '감동'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묶여있는 '종족의 사상'에서 빠져나오는 지적인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기회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오로지 돈 이야기 뿐입니다. 그리고 위신을 약간 언급합니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국내도서
저자 : 우치다 다쓰루 / 김경원(KimKyoungwon)역
출판 : 원더박스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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