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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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롤랑 바르트의 '에크리튀르' 개념

'에크리튀르ecriture'는 프랑스어 동사 'ecrire'의 명사형입니다. '글을 쓰는 것', '글로 쓰인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의 writing과 거의 비슷한 뜻입니다.  롤랑 바르트는 언어를 세 가지 층으로 나누어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랑그langue'와 '스틸style', 그리고 에크리튀르입니다.

1) 랑그langue

랑그는 영어의 'language'입니다.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등 인간은 어떤 언어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태어납니다. 그 때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언어가 '모어'입니다. 그것은 랑그입니다. 랑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하나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랑그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모어 속에 던져지는' 방식으로 태어납니다. 랑그에는 관여할 수 없습니다.

어느새 그 언어로 사고하고, 숫자를 세고, 말장난을 하고, 네올로지즘neologism 을 창조합니다. 그것이 랑그입니다. 문법적으로 파격적이고 처음 보는 표현을 만나도 금방 뜻을 알 수 있고, 또 파격적인 표현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랑그란 그 안에 있는 이상 화자에게 폭넓은 자유를 줍니다. 

2) 스틸style

사전적인 번역어는 '문체'이지만 문체보다는 오히려 '어감'에 가깝습니다. 이는 언어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의 감각을 말합니다. 언어의 소리나 리듬, 글자의 타이포그래픽 형상 등 좋고 싫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기호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로 신체화된 것입니다. 스틸도 주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습니다. 싫은 것은 싫고 좋은 것은 좋지요. 자유의사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인간이 언어 기호를 조작할 때는 두 가지 규제가 있습니다. 즉 '랑그'는 외적인 규제, '스틸'은 내적인 규제입니다. 

에크리튀르느 이 두 가지 규제의 중간에 위치합니다. 에크리튀르는 굳이 말하자면, '사회방언sociolcte' 또는 '집단적 언어 운용'이라고 하면 될까요? 에크리튀르는 일본어라는 커다란 틀 속에 산재하고 있는 국소적으로 형성된 방언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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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튀르의 무서운 점은 그것이 언어 운용뿐 아니라 그 사람의 사회적 행동 전체를 규정해버린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방식 뿐만 아니라 패션, 신체 움직임, 표정, 가치관, 미의식 등을 전부 세트로 정해버립니다. 

우리는 에크리튀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유폐시키는 '우리'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선택하면 언어 사용에 대한 결정권을 상실합니다. 에크리튀르가 요청하는 언어사용법으로 에크리튀르와 어울리는 콘텐츠를 이야기하도록 대체로 발화자는 강요당합니다. 

롤랑 바르트가 '에크리튀르'에 초점을 맞춘 것은 언어적 정형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대다수가 깨닫지 못하 1 고, 지적을 받어라도 부정하기 때문입닏. 우리는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 때 종종 '주어진 대사'를 말합니다. 

옆에서 보면 개체를 식별할 수 없습니다. 개체를 식별할 수 없다는 것은 다른 식으로 말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잔인하게 표현하자면 없어진다고 한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에크리튀르가 미치는 표준화 압력에 대해 지나치게 자각하지 못한다면, 인간으로서 조잡한 방식으로 취급받는다는 리스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135 계층사회적 에크리튀르의 속박

상층의 에크리튀르는 헐겁습니다. 유럽에서는 상류 계층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계층적인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거꾸로 하층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그런 자유가 없어집니다. 한마디로 계층사회란 단지 권력이나 재화나 정보나 문화자본의 분배에 계층적인 격차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계층적으로 행동할 것을 강제하는 표준화 압력 자체가 격차가 있는 사회라는 말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정확하게 언어화하고, 자신이 결여하고 있는 지식, 기능,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을 찾아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배울 기회를 체계적으로 물리치는 사람에게 계층 상승의 기회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계층 사회의 무서운 점은 하위 계층에만 '배우지 않는' 자세를 선택적으로 권장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허의 에크리튀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입 밖에 내도 좋고, 입 밖에 내어야 하는데도 입 밖에 내는 ㄴ것을 허락받지 못한 언어가 있고, 그것이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고유한 지위나 관습 행동을 나누어 맡기고 있다면 그것 역시 일종의 에크리튀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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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가능하면 높은 유동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크리튀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집단을 고정시키고 유동시키지 않기 위한 장치입니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국내도서
저자 : 우치다 다쓰루 / 김경원(KimKyoungwon)역
출판 : 원더박스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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