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나는 당신의 과거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과거에 관심을 가지지 마세요. 

대화가 몸을 입은 것이 사람이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대화에 불과하다. 내면의 대화든, 입으로 뱉는 대화든 말이다. 대화가 몸을 입은 것이 곧 사람이다. 뼈에 가죽을 입혀놓은 게 떠드는데 별의별 말을 다한다. 그리고 그 말의 한계가 곧 그 인생의 한계다.

당신이 하는 말의 본질이 바로 당신이다. 당신에게 인생이 버겁다면 실제로 버거운 것이다. 혼란이 생기는 이유는 '나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말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거꾸로다. 실제로는 당신은 자기 대화를 거쳐 인생 경험을 창조하고, 그런 다음 거기에 맞춰서 행동한다. 언제나 그랬다. 당신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결단코 '있는 그대로'의 인생이 아니다. 당신이 상대하는 것은 인생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다. 사람에 따라 인생에 대한 경험이 그토록 다양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인생은 그냥 '있다'. 그 인생을 뭐라고 부를지는 당신 마음이다. 하지만 당신은 스스로 이름붙인 바로 그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미 마라. 

당신이 어떤 모습이 싫다고 해서 바로 다른 모습이 될 수는 없다. 필요한 과정을 막 건너뛸 수는 없다. 부정적인 감정을 정신의 카펫밑에 쓸어 넣어봤자,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진정한 사고란 당신의 기존 패러다임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을 중단할 때만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식의 사고는 쉽지 않다. 다른 대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어떤 것 혹은 기껏해야 부분적으로밖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어떤 것을 말 그대로 억지로 생각해보고 내 삶과 연결지어볼 때, 그처럼 생각을 확장할 때만 이런 사고가 가능하다. 사고란 '끼어들기'다. 인생의 진정한 돌파구란 인생이 내던지는 것들에 기계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스스로 끼어들 때에만 마련된다. 

하지만 저절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당신은 대부분 정해진 순서를 반복한다. 크게 보면 인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기계적으로 사는 것이다. 


당신은 그 일을 왜 하는가? 그리고 계속 이대로 산다면 어디로 갈 것 같은가? '정말로' 어디로 갈 거 같은가?

만약 당신의 앎이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당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게 실제로 아는 게 아닐 것이다. 자기 수양이란 스스로 하겠다고 말한 일을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을 때조차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부정적인 기분이 들 때조차 긍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 때의 행동이란 '행동하는 척'이 아니다. 

마음이 만들어놓으 덫을 빠져나오는 사람이 그토록 적은데는 이유가 있다. 하루하루 살다보면 이 덫이 그냥 괜찮아 보이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 내 사업을 하고 싶다,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고작 첫 번째 알람에 일어나는 것, 휴대전화를 멀리하는 것조차 대단한 목표처럼 만들며 당신의 잠재력을 폄하하지 않았는가? 그토록 평범하게 반응해서는 정마로 비범한 삶을 살 수 없다.

운이란 자신의 성공을 정의할 수 없는 사람들의 표현이다. 당신의 성공을 뚜렷이 정의할 수 없다면 절대로 그 성공을 되풀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늘 바라던 무언가를 이룬 '이후'의 삶을 살아야할 공포에 직면하기보다는, 그냥 목표까지 한 번 가보는 데 훨씬 몰두한다. 


당신이 들려주는 대부분의 얘기는 구태의연한 '내던져짐'에 관한 얘기들이다. 당신에게 발언권이 없었던 사항들 말이다. 


"우리는 내가 '그런 척'하는 대로 된다. 그러니 '어떤 척'을 할 지 신중해야 한다." - 커트 보니것

나는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아주 투명하고 분명하게 알고 있다. 내 결론이 무엇이고, 어떤 느낌이고, 내 기분이나 관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내가 나의 결론을 장악하지 못하면 그게 내 인생을 어떻게 휘젓고 초토화할지 극명하게 알고 있다. 가장 평범한 '디폴트' 상태의 나 자신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을 때 벌어질 수 잇는 일들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시야의 한계를 곧 세상의 한계로 받아들인다. 이게 바로 지성의 오류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남들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하든 그것 때문에 자동적으로 당신이라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당신이 바뀐다면 당신은 더 작은 인간이 될 뿐이다. 남들의 분노 때문에 화가 난다면, 남들의 원망 때문에 원망을 한다면 지금보다 더 못한 당신이 될 뿐이다. 


"누구나 오직 친구에게만 털어놓을 추억을 갖고 있다. 친구에게조차 드러내지 않고 잣니에게만 내보일 비밀 추억도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조차 이야기하기가 두려운 추억들도 있다. 품위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을 꽤 많이 쌓아두고 있다." - 표도르 토스토엡스키

"습관의 이유와 목적은 언제나 거짓말이다. 그 이유와 목적들을 누군가 그 습관을 공격하며 이유와 목적을 듣기 시작한 후에야 덧붙여진다." - 프리드리히 니체

당신의 꿈조차도 특정한 범위내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꿈이라고 해서 무한하지 않다. 당신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그 '꿈만 같은 삶'은 당신이라는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는가? 당신이 떠올린 표면적 수준의 설명이나 핑계에 만족하지 마라. 더 깊이 파고 들어가라. 바로 거기에 당신의 결론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그어놓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평생 갇힐 인생의 사슬을 스스로 만든다." _ 찰스 디킨스


깨어있는 매일을 당신은 익숙한 '경험점 point of experience'에서 시작한다. 그 경험점은 편안하고 아늑한 곳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이 개선하고 싶고, 더 좋게 만들고 싶고, 결국은 극복하고 승리하고 싶은 곳이다. 당신의 그런 '언젠가는' 식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마친 언젠가는 모든 게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처럼, 목적지에 도착할 것처럼, 모든 게 근사할 것처럼 말이다. 안 그런가?

당신은 지금과 다른 당신이 되기를 추구한다. 지금의 당신이라는 딜레마를 해결하고 어떻게든 당신의 경험점의 무게를 덜 수 있게 말이다. 저런 목표들은? 저 목표들은 당신을 다르게, 더 좋게 만들어주리라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들일 뿐이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유동적인 것을 가지고 뭔가 단단한 것을 만들려고 한다. 당신의 진정한 자기 표현은 존재한다는 게 무엇인지 널리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당신은 대부분의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행복이나 사랑, 열정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추구'한다. 그게 마치 획득할 수 있는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이미' 당신이 쫓고 있는 그것, 추구하고 있는 그것이다. 당신 자신이 그것이다. 자신감이나 열정, 사랑을 찾아다니느라 왜 평생을 소모하는가? 그런 것들은 이미 당신 깊숙한 곳에 존재하고 있는데 말이다. 바다의 힘과 위풍당당함, 산악의 드넓음과 거대함이 당신 안에 있는데 말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인생이 올라가는 것도, 펼쳐지는 것도 아니며, 인생을 위축시키는 거침없는 내면의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젊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너무 몰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거의 범죄이지만, 나이든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에게 진지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의무이지 불가피한 일이다. _칼 구스타프 융

당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사안들을 생각해보자. 그 사안들은 어째서 당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는지 아는가? 당신이 그 사안을 진심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는 그게 더 나아지거나 좀 다른 모습이거나 어떤 식으로든 바뀌기를 바라는 욕구가 없다. 당신은 그것을 '넘어서거나' '극복'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 사안은 그냥 거기 그대로 있다. 이미 받아들였으므로 건드릴 필요도 없다. 그게 당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이유는 당신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사안은 그 사안이다.

인간에게 진정한 받아들임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비난하지 않고,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둘 수 있는 상태 말이다. 그게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는 상태,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영향력이 '제로'인 상태 말이다.

누구나 그림자를 안고 산다. 그것들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아무 행동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둬라.

전부 다 인정하라. 그 결론들은 당신의 일부일 분, 전부가 아님을 깨달아라. 그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당신이 바꾸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그것들은 당신 인생에게 더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만 받아들여라. 그렇게 불편해하는 것이 당신의 병이다. 

인정은 연습이다. 의식적인 훈련이다. 기계적인 반응과 여러 촉발제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하려고, 스스로에게 약간의 공간을 내어주어 자기 방해와 자기 회의로부터 자유로운 인생을 만들라는. 때로는 매일, 매시간, 매분마다 자신을 일깨우는 행동이다. 그래야만 인정이 허용한 공간에서 살 수 있다.


당신의 과거는 당신의 잠재력을 지배한다. 당신은 무엇이든 가능한 삶을 사는게 아니다. 당신의 나의 과거로 미루어 몇 몇 가지 가능한 삶을 살고 있다. 매일매일 당신은 과거로부터 출발한다. 모든 생각, 모든 희망, 모든 계획이 바로 그 과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니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 한들 뭐가 그리 놀라울까? 당신의 출발점으 저 뒤로 밀려나 있고, 당신의 발목은 거기에 단단히 묶여 있다.

당신의 인생은 뭐가 됐든 당신이 주의를 쏟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행동을 취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당신이 하는 일이 결국에는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줄거라고 착각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면 당신 인생에는 문제가 가득해진다. 뭐가 됐든 당신이 저항하면 바로 그 저항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는 진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뭔가 새로운 것, 당신의 잠재력과 당신이 남길 유산에 집중하는 인생이 될 수 있도록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새로운 정서적 접근법, 새로운 행동, 새로운 습관, 당신이 원한다고 말하는 그런 삶이 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과거에 있었던 일 때문에 앞으로 하지 않을 일들이 당신 인생에는 수두룩하다. 앨런 와츠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 과거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은 우리의 상식에 너무 깊이 베어 있어서 없애기가 아주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 자기 방해의 인생을 다 지나간 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과거는 과거에 있다. 다 끝난 일이고,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없다. 그러니 그건 그대로 남겨두기로 하자. 손대거나 참견하지 말자. 우리는 과거를 알아볼 수 있고, 과거를 인정할 수 있으며, 훨씬 더 만족스럽고, 가능성이 가득한 쪽으로 돌릴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실패와 비극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도 많다. 위험이나 잠재적 사고 가능성이 대두된다면 그것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살면서 하는 '모든' 일에 과거가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불가능한 프로젝트의 완료일까지 미리 정해둔다. 뻔뻔하게

20세기의 건축가이자 발명가 버크민스터 풀러는 이렇게 말했다. "기존의 현실과 싸워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서 기존 모델을 한물간 것으로 만들어라."

그들은 거꾸로 일한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미래를 향한 것이다. 그들은 끝에서부터 시작한다. 과거에 좌우되지 않는다. 미래에 끌려간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게 만든다. 이것은 목표를 시각화하거나 구체화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이것은 의미있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에 관한 얘기이고, 장애물이나 제약 혹은 전형적인 자기 방해적 헛소리에 강력히 대처하기 위한 얘기다. 당신은 미래에 도달하려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미래에 이끌려가는 것이다. 미래가 아닌 것들은 모조리 해결하고 공략해야 한다. 전사가 투쟁가가 될 필요가 없다.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이룬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왜 작가가 됐을까? 작가의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삶의 모든 순간을 살고 싶었다. 나에게는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작가였고, 그게 가능한 삶을 구축했다. 나는 작가가 가지고 있을 법한 문제들로 삶을 가득 채웠고, 거기에 필요한 도전들은 내게의욕과 생기를 불어넣었다. '나는 작가'라는 개념을 받아들였을 때 나타난 문제들을 열심히 해결하려고 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이미 작가였다. 

오늘 새로운 미래에 걸맞은 어떤 행동을 할 텐가? 


중요한 것은 당신의 비전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그냥 오래된 뇌의 패턴이자 행동일 뿐이다. 

하루에도 몇 번 씩, 때로는 수백번씩,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 동안, 당신은 자문해봐야 한다. "나의 미래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하려고 말하는가?" 답이 뭐가 되었든 당장 하라.

마르틴 하이데거는 내가 내던져진 방식을 이해하고 나면 인생이 활짝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내던져짐'이 내 정체성을 규정한다. 하지만 그게 작동하는 방식을 알고 나면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주인 의식이 필요하다. 뭐가 되었든 그 동안 장악하고 있던 것이 더 이상 당신을 장악해서는 안된다. 

실수를 했다는 사실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돌덩이를 계속 조각해서 이미 존재하는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당신이 설계한 미래를 존중하는 것이다. 

다비드는 이미 미켈란젤로의 마음 속에 있었다. 그가 한 일은 자신이 만든 미래를 드러낸 것이다. 지금 당신이 해야할 일도 그것이다. 미래를 드러내라. 한 번에 한 조각씩, 매일매일 드러내라. 

지금 당장 미래의 삶을 드러내라. 미래에 보고 싶은 것들, 당신이 미래에 될 수 있는 온갖 것들을 설계하라. 지금으로부터 1년 후에 하고 있을 일을 상상하라. 그 미래를 드러내기 위해 오늘은 무슨 행동을 할 것인가? 당신은 어떤 종류의 관계를 맺고 싶은가? 눈에 보이는가? 좋다. 그러면 현재 이 순간을 보라. 그 미래를 드러내기 위해 당신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가?

현재 삶은 돌덩어리이고, 미래는 당신의 다비드상이다.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어떤 도전이 생길 것 같은가? 어쩌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그 관계를 끝내거나 인생의 다른 큰 그림을 그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해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과거를 반복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드러내는 삶을 살 것인가. 선택을 내려야 할 때다. 

사는 동안 매일매일 이 과제에 매달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분명하다. 

당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확실한 무엇은? 단 하나다. 우리는 죽는다는 것. 그때까지 당신은 이 영광스러운 기회를 이용해서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 당신 삶의 주인이 되라. 남은 하루하루에 무엇까지 가능한지 깨닫는데 필요한 일을 하라. 미래는 이미 도착했다. 당신은 그 미래를 위해 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내 인생 구하기
국내도서
저자 : 개리 비숍(Gary J. Bishop) / 이지연역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20.03.27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