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自卑(자책·열등감)
모든 사람에게는 ‘바라 마지않는 나(원하는 자기상)’가 있고, 동시에 ‘느낌 속의 나(주관적으로 느끼는 자기상)’도 있다. 최상의 상태는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바라는 나 = 실제의 나 = 느끼는 나
그러나 보통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많은 경우,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은 상태에 있다면,
바라는 나 ≠ 실제의 나 = 느끼는 나
이미 상대적으로 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축에 든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어떤 측면에서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상태에 놓이기 쉽다.
바라는 나 ≠ 실제의 나 ≠ 느끼는 나
우리의 세계는 이렇듯 갖가지 왜곡으로 가득하다. 이 왜곡은 종종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성에 어긋나는 결정과 선택을 하게 만든다. 시간은 그런 선택이나 결정이 이성적인지 여부에 관심이 없다. 어쨌든 예전처럼 흘러갈 뿐이다.
가능한 모든 왜곡은 거의 전부, 실제로는 가장 믿기 어렵지만 우리가 또 반드시 의존해야만 하는 ‘느낌’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느낌’은 매우 부정확하고, 특히 쉽게 영향받으며, 심지어 오도되기 쉽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대부분의 사람은 간과한다. 때로는 사회 전체가 주입하는 관념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느낌’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는데, 그 ‘느낌’ 자체가 부정확하고, 특히 영향을 받기 쉬우며, 오도되기 쉽다. 사회 전체의 관념은 결국 ‘대다수의 관념’이 뒤섞인 산물일 뿐이고, 그 안에는 교정되지 않은, 거칠고 왜곡된 이른바 ‘진짜 같은 느낌’이 필연적으로 포함된다.
우리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사회가 주입하는 관념을 선택적으로 희미하게 듣거나 아예 무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 가운데 많은 것은 ‘사회 전체의 왜곡된 느낌’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책/열등감’은 결점이 아니다. 자책해야 할 때는 자책하는 게 정상이다. 마땅히 자책해야 할 모든 순간에 단 한 번도 자책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가야말로 자신을 진짜로 왜곡한 셈이다.
핵심은 여기 있다. 자신감과 자책의 기준을 ‘나 자신’에 둘 것인가, 아니면 ‘타인’에 둘 것인가? 사실 어느 쪽도 아니다. 미와 추의 구별, 강함과 약함의 차이, 영민함과 우둔함의 다름은 개인의 견해에 의존해 존재하는 게 아니며, 누구의 생각 때문에 바뀌지도 않는다.
이제 문제 해결로 들어가자. ‘사물 때문에 기뻐하지도, 자기 때문에 슬퍼하지도 않는다(不以物喜 不以己悲)’는 건강한 상태에 이르려면, 첫걸음은 타인을 조롱하는 일을 멈추는 것이다. 일상에서 남의 ‘약함’이 내 ‘강함’을 실제로 침해하는 일은 드물다. 남의 ‘약함’을 조롱하는 건 대개 내 ‘강함’을 증명하려는 행위지만, 진짜 ‘강함’은 증명이 필요 없다. 증명을 필요로 하는 ‘강함’은 사실상 스스로 드러난 ‘약함’일 뿐이다. 남을 조롱하여 얻는 ‘강함’의 감각은 ‘실제의 나’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타인의 눈에는 그런 행위가 조롱자 자신의 ‘자만’으로 보일 뿐이다. 조롱자가 느끼는 ‘자신감’도 심하게 왜곡된 환상이다. 제3자의 관점에서 잘 들여다보면, 결말은 늘 같다. 남을 조롱한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 상처만 남긴다—사방에서, 전방위로.
다음으로, 조금 ‘기술적인’ 방법이 있다. ‘자기 장점을 잊는 것’이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다. 자기 장점을 완전히 ‘잊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이 말엔 타당함이 있고, 실제 필요하다. 보통 ‘자책을 극복’하려면 최소한 ‘결점을 고쳐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많은 ‘결점’은 고칠 수 없다. ‘결점을 고치는 법’ 같은 레토릭은 어리석고, 심지어 우습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책을 줄이는 데 필요한 건 ‘자기 장점을 최대한 희미하게 대하는 것’이다. ‘자책/자신/자만’이 거의 모두 왜곡된 정의를 뒤집어쓴 사회에서, 자기 장점을 의도적으로 낮춰 다루는 태도는 가장 즉각적인 이익을 준다. 이른바 ‘겸손/로우키’는 자기 보호를 위한 최적화 전략이다. ‘장점을 희미하게 다루기’의 의미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감정을 조절하여 의식적으로 장점을 낮춰 바라보면, 자신의 장점과 단점 사이의 낙차가 인위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변화를 발견한다. 이 낙폭의 축소는, 불필요한 고통을 확실히 줄여준다.
또 하나 괜찮은 방법은 자신의 언어에서 ‘장점/단점’이라는 말을 ‘특징’으로 바꿔 쓰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자주 말한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제한한다.” 주식시장만 봐도, 말을 잘못 고르는 바람에 큰돈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가가 빠졌을 때 원래는 ‘장부상 손실’이라고 해야 하는데, ‘손실’, ‘실손’이라 부르면 심리적 압력을 못 이겨(실은 스스로 겁주어) 던져버리고, 결국 ‘장부상 손실’이 ‘실손’이 된다. 반대로 ‘실손’을 ‘장부상 손실’로 착각해 손실 축소의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특징’이라는 중성어로 ‘장점/단점’의 호불호 꼬리표를 치워버리면, 자신과 타인의 온갖 ‘특징’을 훨씬 차분히 다루게 된다. 그 뒤에는 더 깊은 생각이 있다. 흔히 말하는 ‘장점/단점’은 상대적일 때가 많다. ‘장난 많은’ 아이는 선생님에겐 미움받을지 몰라도, 창의성은 더 높을 수 있다.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은 전장/비즈니스에선 영웅이 될 수도, 장렬히 전사할 수도 있다. ‘말이 많은’ 사람은 평소엔 귀찮을지 몰라도, 교사가 되면 상대적으로 소질이 있을 수 있다.
마지막 방법은 ‘적당히 자신을 방임해 주는 것’이다. 자신이 결점 많은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이, 마음을 해방시키는 중요한 전제다. 앞서 말했듯, 자책은 원래 정상적 감정일 뿐인데, 다만 ‘부정적’으로 낙인찍혔을 뿐이다. 이와 유사하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른바 ‘허영’도 누구나 지닌 너무나 자연스러운 바람인데, 역시 ‘부정적’으로 분류되었다. 사실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자기 결점에 과도하게 매몰될 필요가 없다. ‘조금 자책하면’ 어떤가? ‘조금 자만하면’ 어떤가? ‘조금 허영을 부리면’ 또 어떤가? 누군가가 잠깐 자책/자만/허영을 보였다고 주변 사람이 상처받는다면, 문제는 그 사람이 아니라 주변 사람의 유리 멘탈일 수 있다.
모든 방법은 제대로 작동하려면 약간의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종이 한 장과 펜 한 자루를 꺼내 적어보자. 왼쪽에는 당신의 ‘장점’, 오른쪽에는 ‘단점’을—하루를 다 써도 좋다. 왜냐하면 “이게 정말 내 장점인가?”, “이건 정말 내 단점인가?”를 가려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마친 뒤,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장점/단점을 어떻게 볼지도 추정해보자. 간접적으로 떠보는 것도 좋다—아마 누구나처럼 수차례 놀라고, 심지어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실제의 나’와 ‘느끼는 나’의 차이, 그리고 ‘타인의 눈에 비친 나’를 알게 된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분석하자. 내 ‘단점’ 중,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있다면 고치도록 방법을 궁리하자. 누구에게나 ‘대세에 지장 없는 단점’이 몇 가지는 있다. 그런 부분에서는 적당히 스스로를 풀어주자. 믿어도 좋다. 이 ‘적당한 방임’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결함을 고쳐 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8. 灵感 영감
몇 해 전 내가 작문 수업을 할 때면 학생들이 늘 이렇게 하소연했다. “선생님, 예시를 못 찾겠어요. 어떡하죠?” 그럴 때마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이렇게 답했다. “예시라는 건 돈이랑 같아. ‘생각해내는’ 게 아니라 ‘모아두는’ 거야.” 또 어떤 학생은 물었다. “왜 저는 선생님처럼 ‘훌륭한’ 예시를 못 찾을까요?” 그때 내 대답은 이랬다. “계속 찾아. 모든 건 결국 축적이야.”
지금 돌아보면, 그런 답은 너무 단순했다. 그 인식은 몇 년 동안 작문을 가르친 뒤에야 얻은 것이다. 그날, GRE 작문 문제를 설명하며 이런 문장을 언급했다. “우리 사회는 중요한 인물을 잊는 경향이 있다. 사실 모든 사회가 그럴 수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어떤 중요 인물들이 잊혀졌는가’를 예로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물었다. “우리 사회에 매우 중요하지만 잊힌 인물 세 명을 말해볼 사람?” 강의실에 수백 명이 있었지만 몇몇만 머뭇머뭇 손을 들었고, 내가 “세 명”이라고 강조하자 급히 손을 내렸다. ‘잊힌 중요 인물’을 예로 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곧바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아세요?” 나는 답했다. “원래는 나도 몰랐고, 애초에 알 수 없었지. 그런데 한 가지가 달랐어. 방금 그 문장 - ‘우리 사회는 중요한 인물을 잊는 경향이 있다. 사실 모든 사회가 그럴 수 있다’ - 를 오래전에 내 노트에 적어두었거든. 그래서 그 문장을 적은 뒤 어느 날, 방금 말한 사람들에 관한 글을 읽게 되면, 그 읽기가 GRE 작문과 무관했더라도, 그 문장을 ‘즉시’ 떠올리게 돼. 그러면 그 문장 옆에는 ‘사회가 잊어버린 중요 인물’의 예시가 하나 더 생기지.”
지금 와서 보면, 박식한 이들이 ‘원래 모든 걸 알고 있어서’ 쓴 게 아니라,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 찾고, 쌓고, 발굴했기에 우리가 놀라는 내용이 나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아마 그들 자신도 종종 자기 발견에 놀랐을 것이다. 그러니 소재의 축적은 물론 중요하지만, 미리 방향이나 목표를 정해두면 원래는 상상도 못 했던 소재를 잔뜩 모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칵테일 파티에서 모두가 비슷한 음량으로 삼삼오오 대화를 나눈다. 당신은 몇 사람과 이야기 중이고, 꽤 긴 시간 동안 당신과 상대의 말만 들리며, 다른 소리는 사실상 무시된다. 그런데 다른 무리의 대화 속에서 갑자기 ‘당신의 이름’이 들리면 - 그들이 그다지 가깝지 않은 곳에 있어도 - 그 말은 마치 귀 속으로 ‘튀어 들어오는’ 것처럼 즉시 포착된다. 그 이전의 모든 말은 같은 음량·같은 거리였음에도 완전히 걸러졌는데 말이다. 이것이 이른바 ‘칵테일 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 1953년 콜린 체리(Colin Cherry)가 처음 주목해 이름 붙였고, 공항 관제 통신 문제 해결을 모색하던 시기 연구가 진행됐다. 나는 비로소 이 문제에 더 명확한 설명을 갖게 되었다. ‘특정 정보에 대한 주의’는 우리에게 놀라운 능력을 부여한다. 아주 시끄러운 ‘잡음’ 속에서도 우리가 필요한 ‘주목 대상’을 번개처럼 ‘골라내는’ 능력 말이다.
뇌의 회백질에 저장된 정보 가운데 ‘질서 있게’ 저장된 부분은 극히 일부(대개 12%를 넘기 어렵다)이며, 우리는 이를 ‘의식적’인 정보라 부른다. 더 많은 정보와 파편은 무질서하게 저장되어 있고, 의식으로 곧바로 호출하기 어렵다. 흔히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이라 부르는 부분이다. 입력되는 정보량이 늘수록, 뇌는 필요에 의해 새로운 회백질 세포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쓰는 사람의 뇌에서 회백질 세포가 더 많다는 것도 밝혀졌다. 머리뼈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세포가 늘면 회백질의 ‘밀도’가 더 높아지고, 뉴런 연결의 가능성이 커진다. 이때 사람들이 말하는 ‘융합적 통찰(融会贯通)’이 나타난다. 요컨대, 박식한 사람은 뇌에 저장된 정보 총량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사람이다. 그러니 그들은 늘 ‘융합적’으로 이해하고, ‘지혜로워’ 보인다. 이 관점에서 보면, ‘죽어라 달달 외우기’를 싫어하는 태도는 피상적일 수 있다. 아이스킬로스가 “지혜란 곧 기억력”이라 말한 것도, 당시에는 전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체험에서 비롯된 말이었을 것이다. 어떤 지식 영역은 상대적으로 ‘암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 사실 ‘암기’에는 전혀 다른 인상의 동의어가 있다. 바로 ‘박문강기(博闻强识, 널리 듣고 강하게 기억함)’다.
매일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방대한 정보를 회백질에 저장한다. 그중 상당수는 잠재의식의 형태로 존재해 의식으로 바로 꺼낼 수 없지만, 그것들은 칵테일 파티의 무질서하고 소란스러운 ‘소음’처럼 뒤엉켜 있다가, ‘특정 대상에 대한 주의’가 작동하는 순간, 우리가 ‘주목하는 것’과 관련된 정보를 ‘기막히게’ 포착하게 만든다. 것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영감의 번쩍임’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원인 모를 ‘갑작스런 영감’을 맹신할 필요가 없다. 영감이란 것이 있다 해도, 거저 생기지 않는다. 반드시 근거가 있다. 영감의 출현은 양(量)의 축적이 질(質)의 도약으로 바뀌는 찰나에 피어나는 철쭉 같은 꽃일 뿐이다.
책을 읽고도 책이 ‘깨끗한’ 상태로 남아 있다면, 그건 ‘읽은 게 아니다’. 내 방식대로라면 읽은 책의 ‘정수’를 뽑아 서로 ‘연결’해둘 수 있다. 이것이 나의 ‘토법련강(土法炼钢)’, 토법 제강식 공부법이다.” 이렇게 정교한 부지런함이 있으니, 리아오(李敖)의 불꽃 튀는 ‘영감’이 어디서 오는지 분명해진다.
이 이해에 따르면, 모든 성공의 본질은 하나다. 먼저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방향/목표를 잠금한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함을 확인한 다음, 마음의 힘으로, 그 방향에 더 많은 시간 - 남들보다 더 많고, 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시간을 벗삼아 걸어간다. 시간이 충분히 길게 당신과 동행하면, 인내에 걸맞은 보상을 돌려준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운’이나 ‘하늘이 내린 영감’이라 부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보상이 정말 왔다면, 그 이름은 단 하나 ‘필연(必然)’이다.
9. 鼓励 격려
대부분의 사람은 ‘찬물 끼얹기’를 즐긴다. 자신들의 눈에 ‘이단아’로 보이는 사람에게 반드시 찬물을 끼얹고 싶어 한다. 그 욕망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의심·시기·두려움·분노가 그 욕망을 밀어 올리고, 겉으로는 관심·보호·우정·도움의 가면을 뒤집어쓴 채 나타난다.
이것들을 분명히 보고 나서, 나는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내 곁의 모든 사람을 격려하자. 그가 내 친구가 아니어도. 이렇게 하게 만든 또 하나의 이유는 관찰에서 왔다. 세상을 뒤흔드는 일을 해내는 인간은 극소수 중의 극소수다. 그러니 누군가를 격려하는 일은 사실 리스크가 거의 없다.
어떤 친구가 작은 가게를 열겠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좋지! 내가 뭘 도와줄까?” 그 친구는 멍하니 서더니 “다들 안 될 거래……”라고 했다. 또 어떤 친구가 포토샵을 배우겠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좋지! 스스로 뭔가 만들어내면 분명 기분이 좋아질 거야.” 그녀는 잠시 얼어 있다가 “……다들 나를 비웃는데”라고 했다. 수년 동안, 내가 “좋아!”라는 간단한 세 글자로 격려를 건넬 때마다, 나는 거의 똑같은 표정을 보았다. 먼저 놀람, 그리고 곧 감사.
우리가 멈추지 않고 타인을 격려할수록, 가장 큰 수혜자는 결국 우리 자신이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 우리는 타인의 격려가 없어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이건 아주 중요하다. 많은 이들이 주저하며 시간을, 심지어 삶을 허비하는 까닭은, 남의 격려 없이는 한 발도 떼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격려를 ‘필요로 하지 않는’ 쪽이 될 수 있다. 그건 하나의 경지다.
10. 效率 효율
모두가 효율을 높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많은 ‘전문가’가 아주 단순하고도 명백한 사실을 종종 놓친다. 어떤 기계도 100% 출력으로 계속 돌 수 없듯,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기억하자. 누구도 언제나 100% 효율적일 수 없다. 어떤 때엔 매우 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 상태가 영구히 지속되진 않는다. 억지로 그렇게 유지하려 들면, 항상 100%로 도는 기계처럼 과도한 마모로 조기 폐기되는 꼴을 맞게 된다.
나는 종종 학생들이 몇 장짜리 ‘할 일 목록’을 만드는 걸 본다. 그러나 그건 대개 못 끝낼 일을 계획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누구나 능력과 효율의 상한이 있다. 일생에 수많은 성취를 남긴 류비셰프가 이렇게 말했다. 純時間은 毛時間( 그 일에 들인 총 시간) 보다 훨씬 적다. 누구나 수면·식사 같은 표준 활동이 있고, 그 밖의 비표준 활동(근무, 학술, 사회활동, 여가 등)에 쓸 수 있는 毛時間 은 하루 12~13시간 안팎이다. 따라서 시간 예산을 짤 때는 여유 공간을 남겨야 한다. 예기치 않은 일을 처리할 버퍼가 필요하고, 적절한 휴식과 이완을 통해 에너지를 복구해야 더 많이, 더 잘 할 수 있다. 일·학습 외에도 정상인의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 만약 대부분의 시간을 일·학습에 쓰면 성과 지향형이고, 대부분을 향락에 쓰면 만족 지향형이다.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일에서, 또 어떤 이는 일상에서 더 큰 행복을 얻는다. 그러니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이때 황금분할(61.8%)을 실무적 도구로 써보자. 하루 계획 가능 시간이 10시간이고, 자신이 성과 지향형이라면 약 6.18시간을 일·학습, 3.82시간을 즐거움에 배분한다. 반대로 만족 지향형이면 6.18시간을 즐거움, 3.82시간을 일·학습에 둔다.
사람은 각자 다른 것에 집중한다. 어떤 이는 과도할 만큼 한 가지에 몰입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뇌에 끌려다니는 사람이지, 뇌를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다. 복잡한 노력을 통해 얻는 정신적 즐거움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즉각적 감각 자극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훈련을 통해 적어도 부분적으로 뇌의 충동에서 벗어나 뇌를 통제할 수 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루 행동 목록에서 ‘재미는 없지만 매우 중요한 일’의 비중을 보라. 하루 종일 그런 일로 채워졌다면, 당신은 뇌의 주인이 된 것이다. 물론 이 점에서도 극단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만점 100을 목표로 하기보다 61.8점이면 충분하다. 61.8 이상을 얻으려면 너무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 올림픽 챔피언을 보라. 그들의 몸은 종종 상처투성이며, 많은 선수는 부상 등으로 일찍 은퇴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건 끝까지 버틴 소수뿐이다. 여기서 ‘끝까지 버팀’은 의지가 아니라 운의 요소도 크다. 게다가 영원히 그 상태를 유지할 수도 없다.
많은 이들이 중도 포기하는 까닭은 목표를 너무 높게 잡고, 그에 따르는 대가를 모른 채 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인식이 중요하다. 많은 즐거움은 자기인식 위에 세워진다. 왜 많은 사람이 시간관리 책을 많이 읽고도 성과가 없는 것은 책이 틀려서가 아니다. 매번 스스로에게 100점을 목표로 걸기 때문이다. 내용이 옳아도 실천 설계가 비현실적이면 결과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게다가 책들 중 다수는 실제로 품질이 낮다. 걸작은 항상 소수다).
이제 종이와 펜을 꺼내라. 재미는 없지만 정말 중요한 일들을 적어보자. 학생이라면 영단어 암기, 교사라면 작문 채점, 프로그래머라면 충분한 주석 작성, 영업관리자라면 내년도 예산안일 수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고르고, 다음 1주~1달 동안 매일 최소 2시간 ‘그 일만’ 하도록 시간표를 짜라(가능하면 3시간이면 더 좋다). 대부분의 경우 2시간이면 충분하다. 하루 4시간 몰입이 필요한 일을 끝까지 해냈다면, 사람들은 널 부러워할 것이다. 더 좋은 건, 그들은 존중할 것이다. 자기들은 못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훈련 없이는 재미없는 일에 2시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아무도 훈련 없이 바로 되지 않는다.
초기에는 시간 분할법을 쓰자. 2시간(120분)이 목표라면, 그 일을 20분×6블록으로 나눈다. 20분 집중 + 5분 휴식을 한 세트로, 휴식 때는 작은 보상(커피·우유·연인에게 달달한 전화 한 통 등)을 주라. 그리고 휴식 마지막 1분에 마음을 추슬러 다음 20분으로 들어간다. 이 방법으로 120분 순집중을 위해 총 150분 내외를 잡게 된다. 단순하지만 매우 효과적이어서 성과가 빨리 보이고, 지속하기 쉽다. 일정 기간의 훈련을 거치면 이런 분할 없이도 중요한 일에 곧장 깊게 잠수할 수 있게 된다. 그 일이 재미있든 없든.
11.节奏 리듬
우리는 삶의 리듬을 조금 더 느리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많은 계획이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는 실제로 ‘초인 계획’(불가능 미션)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계획표에서 “하루 200단어 외우기”, “하루 영어 에세이 5편” 같은 항목을 자주 본다. 초심자에게 이런 강도와 템포는 그저 ‘그럴듯해 보일 뿐’이다. 모두가 급한 세상에서 속도를 늦추는 일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가치 있는 일은, 천천히 오래 하는 가치가 있다.
많은 이가 ‘속성 비법’을 꿈꾼다. 오랫동안 느슨하다가, 갑자기 마감이 닥치면 시간은 모자라고, 남은 건 속성에 대한 기대뿐. 비슷한 환상을 가졌다면 놀랄 일 아니다. 대부분이 그렇다. 거의 인간 본성이다. 그 본성이 우리를 허덕이게 한다. 그러니 패스트푸드 산업이 번성하고, 무수한 학원 산업이 ‘정규 교육’과 나란히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며, 매년 수만 종의 다이어트약이 출시된다. 하나같이 효과 없음이 입증돼도 다음 해엔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팔린다.
따라서 정답은 이렇다: 앞으로 필요할 능력을 미리 가늠하고, 그것이 훈련으로 숙련 가능한지 확인한 뒤, 장기 계획을 세워 한 뼘씩 꾸준히 실행한다. 이건 내 독창적 통찰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이가 말했다. “기회가 왔을 때 준비 안 된 자신을 발견하지 말라”, “기회는 준비된 자를 편애한다.” 이 뜻을 제대로 체득하면 우리는 비로소 삶을 직시하고 깨어난다. 한번 깨어나고 나면, 바쁘기만 하고 성과 없는 이들이 얼마나 우스운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평생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좇는다. 그리고 결국 두 길 중 하나다. 인생에 실망하거나, 종교에 기대 내세를 바라보거나.
12. 物极必反 물극필반
우리가 알다시피 모든 영리 조직에게 ‘수익 확대(开源)와 비용 절감(节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 창업자는 대개 수익을 늘리는 데 더 신경 쓰고, 그 접근이 주효해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후대의 경영자(수성형)들은 주로 비용 절감을 주요 업무로 삼는데, 어쩌면 수익 확대가 그들의 장기가 아니기 때문일 수 있다. 진정한 성공가는 수익을 중시할 때도 합리적으로 돈을 써 가며 비용을 줄이고, 비용을 중시할 때도 수익 확대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릇 모든 일은 ‘물극필반(끝에 이르면 도리어 반대로 돌아감)*이기 때문이다.
1) 절대로 ‘수면 시간’을 무턱대고 줄이지 말 것
2) 가족과의 대화 시간을 가능하면 줄이지 말 것
3) 사교 시간을 되도록 포기하지 말 것
도움이 필요할 때 벽에 부딪히지 않으려면, 평소에 내가 먼저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돕는 방식은 많지만, 가장 가치 있고 오래 남는 도움은 돈이 아닌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우리는 금전 지원 능력이 없을 수 있고, 돈이 아니라 다른 것이 더 절실할 때가 많고, 돈은 부작용(돌아오지 않거나, 관계를 상하게 함)을 낳을 수 있으며, 돈을 주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사람은, 설령 돈을 줘도 진심으로 고마워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자원을 써서 가치 있는 사람을 돕자. 네가 정답을 아는 문제 풀이를 묻는 친구가 있다면 성심껏 설명하라. 지식은 전달 과정에서 양쪽 모두에게 새로운 의미를 낳는다. 타지 친구가 책을 부탁하면 최대한 빨리 사서 보내자. 단,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먼저 알리자.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최선을 다해 돕고, 정말 불가능하면 즉시 불가를 고지하라.
마지막으로, 도울지 말지 결정할 때 ‘그가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고려하자. 반대로 내가 도움을 청할 때도 상대는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같은 판단을 한다. 그리고 ‘훌륭한 사람은 도움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실제로 훌륭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도움을 받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잠재적 계산 속에서 ‘훌륭한 사람을 도울수록 기대 수익이 크다’는 직감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사교의 질을 높이는 가장 좋은 길은, 내 시간과 에너지를 ‘나를 더 뛰어나게 만드는 일’에 더 많이 투입하는 것이다비록 단 한 분야라도. 그러면 좋은 인연과 도움이 자연스레 모인다.
13. 自我证明 자기증명
사람에게 ‘자기증명’의 욕구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나 스스로에게 확증”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증명”에 매달릴 때 생긴다. 잘하는 사람은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드러나고, 평범한 사람도 억지 증명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쓸모없는 소모, 시기 유발, 어색한 과시만 남기기 쉽다.
1) “나는 남들보다 낫다”는 착시
팀이 성공하면 사람은 공을 자기에게, 실패하면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기 쉽다(自利性 편향). 대부분의 운전자·외모 자기평가가 평균 이상으로 쏠리는 것처럼, 나도 남도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 타인의 인식이 냉정하지 않은 만큼 내 자기평가도 냉정하지 않다. “왜 날 몰라주지?”라는 고민 자체가 부질없을 수 있다.
2) “조금 더 잘함”은 의미 없다. 압도적 격차가 아니면 논쟁만 남는다. 남보다 조금 잘하는 정도로는 설득이 안 된다. 정말 크게 앞서면 사람들은 비교축을 바꿔 당신이 약한 면으로 승부하려 든다. 그러니 인정을 목표로 하지 말고, 무의미한 경쟁 축에서 이탈하라. 타인이 바꾸는 잣대에 반응하는 순간 시간·감정의 인질이 된다.
3) 네 가지 유형과 ‘증명’의 함정
(1) 유능+포부 有 : 대체로 길이 열린다.
(2) 유능+포부 無 : 4번이 1번으로 오인하여 경쟁·견제가 붙는다 → 불필요한 ‘증명 전투’에 휘말리기 쉽다.
(3) 보통+포부 無 : ‘평온형’. 남과의 비교가 약해 삶이 안정적.
(4) 보통+포부 大: 기묘한 지름길로 성과를 내기도 하나, 실패 시 ‘야심가’ 낙인이 따른다 → 스스로의 위치·야심을 장기 관점에서 조정하고, 남이 강요하는 게임에 들어가지 말 것.
4) 마음가짐의 악순환을 끊기 : 현상→심리→의사결정 루프
같은 시작자금 1만으로 ‘자’·‘축’ 두 종목 중 하나를 고른 A·B의 10개월 후 운이 엇갈렸다고 하자.
B (+20%): “임무 완료”라는 여유로 합리적 대기가 가능.
A (–20%): “두 달 내 25~57% 만회” 같은 비현실 목표로 무리수에 손이 간다.
B의 평온도 결국 현재 운의 산물일 뿐, 나중에 역전 상황에서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 '니부어의 ‘평정의 기도’를 갖고 다녀라.
되돌릴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내 통제하에 있는 것은 바꾸고, 그 둘을 구분할 지혜를 구한다.
5) ‘증명’ 대신 ‘축적’ : 복리(Compound) 사고로 전환
단순가산이 아니라 복리다: 10만 원을 연 10%로 30년이면 약 174.5만. 처음엔 미미해 보이지만 궤도 돌입 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사람들이 복리를 못 체감하는 이유는
- 작은 P: 시작 원금이 작아 보이는 결과
- 긴 n: 30년 기다림의 심리 장벽
- 작은 i: 10%의 체감 둔감
하기 때문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P·i·n 중 내가 통제 가능한 축을 늘리면 된다.
P(투입) : 하루 1시간이라도 루틴 자산을 쌓기
i(질): 피드백 루프 설계(작업→검토→개선)로 학습수익률 올리기
n(시간): 조기 착수·지속이 최강의 치트키
6) ‘귀찮음’은 복리의 적: 저이율 장기부채처럼 쌓인다
귀찮음 회피 습관은 즉시 치명상은 아니지만 이자 복리로 쌓여 결국 발목을 잡는다.
조직 관점에서 보면, 귀찮음을 외주화하는 사람은 팀의 순이익을 잠식한다. 선별·차단만으로 팀의 속도가 즉시 가속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귀찮음에 과세하라. ‘귀찮다’고 느끼는 과업부터 20분만 착수(마이크로 스프린트)해라. 착수 마찰을 줄이는 설계가 핵심이다.
결론: “증명”보다 “구분–집중–축적”
남에게 보이기 위한 증명은 최악의 ROI다.
구분 : 무엇은 받아들일 것이고 무엇은 바꿀 것인가.
집중 : 남이 바꾸는 경쟁 축에서 이탈하고, 내가 통제하는 축에 압도적 격차를 만든다.
축적 : 복리의 세계에서는 조기 시작·지속·미세개선이 곧 왕도다.
시간이 적이 될지, 친구가 될지는 내가 무엇을 축적하느냐로 결정된다. 타인의 인정은 결과로 따라오는 부수효과일 뿐, 목표가 아니다.
'리샤오라이 李笑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간을 친구로 만들어라 제7장 : 응용(应用) (1) -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겐 기회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준비된 사람에게는 어디든 기회가 있다 (0) | 2026.05.11 |
|---|---|
| 시간을 친구로 만들어라 제6장 : 소통 (交流) - 험주의에서 벗어나려면, 단순한 이해만이 아니라 용기 또한 필요하다 (0) | 2026.05.02 |
| 시간을 친구로 만들어라 제5장 : 사고 (思考) - 개념이 불명확하다, 그리고 불확실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0) | 2026.04.30 |
| 시간을 친구로 만들어라 제4장 : 학습(学习) - 진정한 의미의 ‘인간’으로 진화하라 (0) | 2026.04.27 |
| 시간을 친구로 만들어라 제3장 : 관리(管理 ) (2) - 시간은 오직 하나의 행동만 한다. ‘흘러간다’. (1) | 2026.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