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1.

수의 역사는 가장 단순한 양의 정수, 즉 자연수 rational number 로 부터 시작되었다.

덧셈과 곱셈만 한다면 자연수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나눗셈이라는 연산이 도입되면서 자연수의 세계는 심각한 난관에 봉착했다.

2를 8로 나누면 더 이상 자연수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수를 자연수로 나누는 연산 자체는 매우 단순하지만 정확한 답을 얻으려면 수의 개념을 확장시켜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질문이라도 마땅한 해답을 내지 못하는 것은 수학자에게 너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기에, 그들이 기어이 해답을 찾아내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난처한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 '완전성 completeness'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자연수만으로 나눗셈을 하다 보면 분수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답을 낼 수 없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이런 경우, 수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완전성을 유지할려면 분수가 필요하다."

 

 

2.

힌두의 수학자 역시 완전성을 추구하던 중 음수를 발견했다.

3에서 5를 빼면 더 이상 자연수로 답을 낼 수 없게 된다.

뺄셈이라는 연상에서는 완전성이 보장되려면 무언가 다른 수가 도입되어야만 했다.

이렇게 발견한 수가 음수 negative number 이다.

 

 

3.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도 완전성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발견된 것이 무리수 irrational number 였다.

자기 자신을 두 번 곱하면 2가 되는 수, 즉   는 어떤 수인가?

그리스인은   가 7/5 과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확한 값을 얻으려고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그들이 사용하던 수의 체계 안에서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는 정수도 분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2의 제곱근은 얼마인가?' 라는 간단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 괴상야릇한 수도 정상적인 수의 범주에 포함시켜야만 했다.

모든 연산에 대한 완전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처럼 수학자들은 수의 왕국에 다양한 식민지를 합병시켜왔던 것이다.

 

 

← 모든 수들이 양쪽으로 무한히 뻗어 있는 수직선상의 한 점을 점유하고 있다. 이 수직선의 형태를 보면 앞에서 말한 '완전성'이 분명하게 보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4.

그러나 16세기 이탈리아의 라파엘로 봄벨리 Rafaelol Bombelli 가 여러 가지  수들의 제곱근들을 연구하던 중 도저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 하나를 제기한 것이다. 그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1의 제곱근, 즉  은 1이다. 1 × 1 =  1 이기 때문이다. 또한 -1 도 답이 될 수 있다. 따라서 +1 의 제곱근은 +1 과 -1 두 개이다. 제곱근이 여러 개 있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1 의 제곱근은 얼마인가?"

 

이 문제는 사실 해결이 불가능했다. 같은 수를 두 번 곱한 결과는 항상 양수이기 때문에 +1 이나 -1의 제곱근은 이 될 수 없었다. 수직선상에는  을 위한 자리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이런 단순한 질문 하나 때문에 완전성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구겨진 자존심을 추스르며 하는 수 없이 새로운 수의 개념을 받아들여야 했다.

봄벨리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새롭게 탄생한 수 - 이것이 바로 i 라는 단위로 표현되는 '허수 imaginary number'였다.

 

 

그러나 허수가 발견되자, 곧바로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기존의 수직선은 이미 정수와 분수, 그리고 무리수들로 만원사례를 이루어 허수가 끼어들 틈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수학자들은 기존의 수직선을 실수축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우너점(0 이 있는 위치)에서 실수축과 수직으로 교차하는 새로운 허수직선, 즉 허수축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수'는 더 이상 일차원의 선에 국한되지 않는, 2차원 평면상의 한 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