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1

세 글자로 이루어진 다음 집합을 생각해보자.

 

{a, b, c}

 

그리고 다음과 같다고 하자.

 

a + a = q, a + b = b, a + c = c, b + b = c, b + c = a, c + c = b

a × a = q, a × b = a, a × c = a, b × b = b, b × c = a, c × c = b

 

위에 나열한 세 글자를 더하고 곱하는 규칙은 계산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정의definition 을 뜻한다.

그러니깐 내가 3 × 4 = 12 인 이유를 묻는다면 '음 , 4에 그 자신을 3번 더하는 거니까' 같은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위 글자들의 경우 나는 달리 어떤 방식으로 그 답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보인대로 글자들을 더하고 곱하는 규칙을 정한 것이다.

이러한 규칙을 보통 수에 사용되는 용어로 덧셈과 곱셈이라고 일컫는데, 이른바 수라고 보이는 것은 없으니 혼란스럽고 심지어는 짜증이 날 수도 있다.

 

 

2

결합성이란 우리가 다루는 체계에서 임의의 x, y, z 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한다.

 

(xy)z = x⊕(yz)

(xy)z = x(yz)

 

즉 x 에 y 를 더한 다음 z 를 더하면 y 와 z 를 더한 다음 x 를 더한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곱셈도 이와 비슷하다.

이러한 특성이 유효할 때면 언제든 괄호를 없애고 그냥 쓸 수 있다.

 

xyz

xyz

 

(2×3)×4 = 2×(3×4) 와 같이 숫자가 작은 경우 우리의 직관적인 수감각 덕에 이러한 특성이 지나치게 이해하기 어려워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음과 같다면?

 

56088×789 = 123×359784

 

이렇게 써놓으니 설명히 필요한 놀라운 우연의 일치처럼 보일수도 있는데, 사실 이것은 다음과 같다.

 

 (123×456)×789 = 123×(456×789)

 

 

3

교환성이란 우리가 다루는 체계에서 임의의 x, y, z 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한다.

 

xy = y⊕x

xy = y⊗x

 

일반적 상황에서는 더 이상 언급이 필요없을 정도로 분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곱셈의 경우에는 좀 더 생각해보는게 좋다.

다음은 3×5 와 5×3 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렇게 동그라미를 그려보면 단지 그림을 회전시킴으로써 두 그림이 결국 같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4

단위성이란 수체계에서 모든 y 에 대해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는, 덧셈의 단위원unit 이라고 하는 어떤 원소 x 가 우리 체계안에 있다는 것이다.

xy = y

또한 수체계의 모든 y 에 대해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는 곱셈의 단위원이라고 하는 z 도 존재한다.

 

 

z⊗y = y

 

단위성을 논하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인류 문명이 수​천년에 걸쳐 이룩한 어마어마한 개념적 진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들이 수체계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든 구조에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을 일상적인 말로 고쳐보면 다음과 같다.

자존심이 있는 수 체계라면 모두 영이 있어야 한다.

5

​보통 사용하는 0 이 수많은 논란을 점철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분명 들어봤을 것이다.

사람들은 0 에 수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듯하다.

당시 수는 어떤 양quantity 을 표현했다.

​그렇다면 아무런 양도 표시하지 않는 수라는 것이 어찌 존재하겠는가?

그럼에도 지금은 0 을 수 체계에 포함시킨 것이 정말 대단한 개념적 진보였다는 점을 충분히 수긍한다.

6

0 은 워낙에 ​수로 잘 받아들여진 나머지, 실은 가장 흔히 사용할 뿐만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어떠한 수체계에든 이와 비슷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다.

1 의 경우 주목할 만한 것은, 어떤 것을 그 자신에 한 번 더하는 것이 여러 번 더하는 것의 여전한 특례임을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여긴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7

수많은 정교한 개념들에 대해 내가 내심 품고 있는 의구심은 이런 것이다. ​

즉 자명한 예를 포함하도록 확장하는 것이 실제로 성숙한 이론으로 발전하는데 아주 중요한 단계라는 것이다.

8

단위성 공리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덧붙이면, 일반적인 수체계에서 원소들이 반드시 양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익숙해지기 어려운 얘기일수도 있지만, {a, b, c} 라는 수체계를 소개한 것도 이러한 제안을 이해시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0 과 1 을 정의하자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양적' 용어라기 보다는 다른 것들에 작용하는 방식을 뜻한다.

9

분배성이란 입력되는 임의의 x, y, z 에 대해 다음을 말한다.

x⊗(yz) = (x⊗y)⊕(x⊗z)

이 중요한 특징은 ​두 가지 규칙이 상호 작용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는데, 이 둘에 아주 다른 역할을 부여한다.

즉 위 등식에서는 규칙 ⊗ 의 역할이 규칙⊕ 의 역할과 다르다.

특히 다음과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x(y⊗z) = (xy)⊗(xz)

이 경우를 서술하는 또 한가지 방법은 '덧셈'이란 위의 첫번째 분배성 법칙에서 나오는 기호 ⊕ 로 표시되는 연산에 부여하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10

​어떤 연산을 덧셈이라고 부를지 정리했으니, 여기에 추가적인 요건을 부과해보자.

덧셈의 가역성은 임의 덧셈효과를 '무효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특징이다.

즉 우리 체계에서 임의의 x 에 대해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는 y 가 있어야 하고, 이것을 -x 라고 부른다.

여기서 0 은 체계에 있어야만 하는 덧셈 단위원을 가리킬 뿐이라는 것을 떠올리자.

xy = 0

어떤 수체계에든 '음수' 같은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수체계에서 양음을 나타내지 않는 수만 해도 끔찍한데, 음의 양quantity 을 생각한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어째서 보통의 음수까지 필요하단 말인가?

실제 음의 수가 필요한 것은 그와는 다른 얘기다.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게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a-b = a+(-b)

지금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하지 않겠는데, 아마도 간결하고도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덧셈의 가역성' 요건으로 인해 생기는 뜻하지 않은 재난은 일반적인 자연수 N 이 이러한 의미에서 수체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나저나 바로 위에 소개한 표기법은 어떤 수 체계에서나 뺄셈을 정의하는데 사용된다.

11

우리가 수체계라고 부르는 것은 이 모든 특성을 갖춰야 한다.

어떤 집합에서 이 모든 특성이 성립하는 방식으로 입력과 출력이 쌍을 이루는 두 가지 절차를 정의할 수 있으면, 이것은 일반적인 연산을 모방하는 일종의 그림자 같은 것으로 여기에 '덧셈'과 '곱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합의한다.

한편 절차가 하나 뿐이면 어떤 이름을 붙이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연산이 하나인 집합들 역시 수학에서 아주 중요한 것으로 드러나지만 (단위반군monoid 이 그렇다)​ 그런 경우의 연산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또는 글 쓰는 이의 기분에 따라 곱셈이라고도, 덧셈이라고도, 또는 결합이라고도 불러도 된다.

구분을 해야 할 때는 우리의 구조적인 특성에 따라 작용하는 두 가지 연산이 있을 때뿐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어떤 것을 덧셈으로 부르고 어떤 것을 곱셈으로 부르는 것인지는 분배성으로 판단할 수 있다.

12

0 에 무엇을 곱하든 0 이다.

​선택의 여지가 아예 없다. 최소한의 특성에서 이를 볼 수 있다.

0 + 0 = 0

물론 0 을 더하는 것은 0 그 자체를 포함하여 그 어떤 것도 변화시키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다음과 같다면 반드시 x 는 영이어야 한다.

x + x = x

양변에 -x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된)을 더하여 다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x = 0​

이제 항등식 0 + 0 = 0 에 양변에 임의의 원소 a 를 곱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a·(0 + 0) = a·0

​여기서 분배성을 이용한다.

​a·(0 + 0) = a·0​ + a·0​

여기서 다음을 추론해낸다.

a·0​ + a·0​ = a·0​

​몇 줄 앞에서 이런 항등식이 있으면 반드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고, 이것이 우리가 주장하던 것이다.

a·0​ = 0

이 때문에 이제 영이 아닌 어떤 것도 영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나눗셈이 어떻게든 이치에 닿으려면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고 할 때 반드시 b = a·0​ = 0 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b/0 = a

이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b 가 영이 아니라면 이것을 0 으로 나눌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다음 방정식의 해인 x 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b = ​x·0

b 가 영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0 으로 나눌 수 있을까?

0/0 = a

을, 만약 위와 같다면 이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될 것이다.

0 = ​a·0

그러나 a 가 어떤 것이든 이것을 만족한다! 그러니깐 0 을 0 으로 나눌 수는 없는데, 그러면 답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게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 한 가지 있기는 하다. 0 이 수체계의 유일한 원소일 때이다)

요약하면, 어떤 것도 0 으로 나눌 수는 없다.

 

소수공상 Prime Fantasy
국내도서
저자 : 김민형 / 안재권역
출판 : 반니 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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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