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추방 Die Austreibung des anderen
1. 오늘날 같은 것의 테러는 모든 삶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전면적인 디지털 네트워크와 소통은 타자와의 만남을 쉽게 해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히려 낯선 자와 타자를 지나쳐 같은 자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하도록 하고 우리의 경험 지평이 갈수록 좁아지게 만든다. 그것들은 우리를 무한한 자기 매듭 속으로 얽어 넣고, 결국에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표상들을 주입시키는 자기 선전"으로 이끈다.
타자의 부정성과 변모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경험을 만들어낸다. 어떤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를 기습하는 것, 우리를 맞히는 것, 우리를 덮치는 것,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 우리를 변모시키는 것"을 말한다. 경험의 본질은 고통이다. 그러나 같은 것은 고통을 주지 않는다. 오늘날 고통은 같은 것을 지속시키는 '좋아요'에 밀려난다.
정보는 단순하게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에 반해 엄밀한 의미에서의 지식은 느리고 긴 과정이다. 지식은 아주 다른 시간성을 지닌다. 지식은 성숙한다. 성숙은 오늘날 우리가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시간성이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시간을 파편화하고, 시간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들을 제거하고 있는 오늘날의 시간 정책은 성숙과 어울리지 않는다.
빅데이터에도 지식은 거의 들어 있지 않다. 빅데이터는 상관성을 조사하는 데 사용된다. 상관성이란 A가 발생하면 흔히 B도 발생한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알지 못한다. 상관성은 인과관계, 즉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조차 밝혀내지 못하는 가장 원시적인 지식의 형태다. 그것은 그렇다. 왜라는 질문은 제기되지 않는다. 따라서 아무 것도 파악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식은 파악하기다. 빅데이터는 이렇게 사유를 필요없는 것으로 만든다.
2. 사유는 같은 것을 중단시킬 수 있다.
그래서 사유는 사견성을 지닌다. 이에 반해 계산은 같은 것의 무한한 반복이다. 사유에 반해 계산은 어떤 새로운 상태도 낳을 수 없다. 계산은 사건을 모른다. 프랑스어로 디지털은 numerique 이다. 수적인 것은 모든 것을 셀 수 있고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같은 것을 영구화한다.
3. 찰리 카우프만 Charlie Kaufman <아노말리사 Anomalisa>, 같은 것의 지옥
4. 테러리즘 - 세계적인 같은 것의 시스템에 대한 균열
사람들을 테러리즘으로 이끄는 것은 종교적인 것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세계적인 것에 맞서는 단독적인 것의 저항이다. 따라서 특정 종교나 단체를 조종하는 테러방어조치는 가망없는 대체행동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것의 테러 자체가 테러리즘을 낳는다.
세계적인 것의 폭력은 일반적인 교환에 순응하지 않는 모든 단독적인 것을 쓸어 없앤다. 테러리즘은 세계적인 것에 맞서는 단독적인 것 그 자체이다. 어떤 교환도 거부하는 죽음은 단독적인 것 자체다. 죽음은 테러리즘과 함께 시스템 속으로 난폭하게 진입한다. 시스템 안에서 삶은 생산과 성과로 전체화된다. 죽음은 생산의 종말이다. 테러리스트들의 죽음 예찬과 삶을 그저 삶으로서 무조건 연장하려고만 하는 오늘날의 건강 히스테리는 서로가 서로의 조건이다. "너희는 삶을 사랑하고, 우리는 죽음을 사랑한다."라는 알카에다의 구호가 바로 이런 체계적인 연관을 지적하고 있다.
5. 국수주의 - 신속한 정체성의 제공
신자유주의는 체제비판적인 혹은 체제에 부적합한 사람들을 달갑지 않은 인물들로 확인하고 배제하는 "반옵티콘 banopticon", 즉 추방의 옵티콘을 구축한다. 판옵티콘panopticon은 훈육을 위해 작동하지만, 반옵티콘은 안전을 위해 작동한다.
신자유주의를 생명정치로 교정하지 않으면 불안과 두려움에 좌우되는 대중이 생겨날 것이며, 이들은 민족주의적, 국수주의적 세력들에 쉽게 포섭된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외국인에 대한 적대적 태도로 바뀐다. 자신에 대한 걱정은 외국인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증오로도 표현된다. 두려움의 사회와 증오의 사회는 서로가 서로의 조건이다.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는 실제로는 적이 아니라 형제다.
돈조차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정체성도 안전도 없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상상적인 것으로, 예컨대 신속하게 정체성을 제공해주는 국수주의로 넘어간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적을 발명해낸다. 그 한 예가 이슬람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의미를 제공해주는 정체성을 갖기 위해 상상적인 경로를 통해 면역성을 구축한다. 자신에 대한 걱정이 무의식적으로 적에 대한 갈망을 일깨운다. 적은 상상적인 형태 속에서도 신속하게 정체성을 제공해준다.
"적은 우리 자신의 문제가 형태화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의 척도를, 나 자신의 경계를, 나 자신의 형태를 획득하기 위해 적과 맞서 싸워야 한다." 상상적인 것은 현실 속의 결핍을 보충해준다. 테러리스트들 안에도 상상적인 것이 내재한다. 세계적인 것은 현실적인 폭력을 야기하는 상상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6. 진정성의 테러
진정성은 오로지 자기 자신과만 같을 것, 오로지 자신을 통해서만 자신을 정의할 것, 자기 자신의 저자이자 원작자일 것을 강요한다.
진정성의 강제는 자아로 하여금 자신을 생산하도록 강요한다. 진정성은 만인을 자기 자신의 생산자로 만든다. 자기 자신의 경영자로서의 자아는 자신을 생산하고, 자신을 실행시키고, 자신을 상품으로 내놓는다. 진정성은 판매 논리다.
오로지 자신하고만 같고자 하는 진정성의 노력은 타인들과의 영구적인 비교를 낳는다. 갈테-만들기의 논리는 다름을 같음으로 바꾼다. 그 결과 다름의 진정성은 사회적인 동형성을 고착시킨다. 이 진정성은 시스템과 일치하는 차이만을, 다시 말해 잡다함만을 허용한다. 신자유주의적 용어로서의 잡다함은 착취할 수 있는 자원이다. 이런 잡다함은 어떠한 경제적 활용도 거부하는 상이성과 대립한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타인들과 다르고자 한다. 그러나 이 타인과 다르고자 함 속에서 같은 것이 계속된다. 이는 보다 높은 차원의 동형성이다. 같음은 다름을 관통하여 계속 자신을 고수한다. 다름의 진정성은 오히려 억압적인 획일화보다 더 효과적으로 동형성을 관철시킨다.
7. 두려움
정신은 부정적인 것을 똑바로 쳐다보고, 부정적인 것의 곁에 머무를 때만 이 힘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부정적인 것 곁에 머무르는 대신 그것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을 고수하면 같은 것만 재생산된다. 부정성의 지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성의 지옥도 있다.
사유가 진리와 사건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사건은 현실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열어놓는다.
8. 문턱
오늘날 문턱이 많은 이행은 문턱이 없는 통로에 밀려난다. 인터넷 속에서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관광객이다. 우리는 더 이상 문턱에 거주하는 호모 돌로리스 homo doloris (슬픔의 인간)이 아니다. 관광객은 변신과 고통을 수반하는 경험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상태에 머무른다. 그들은 같은 것의 지옥을 여행한다. 하지만 문턱은 타자에 대한 환상을 자극한다.
9. 반체
객체라는 말은 내던지다, 앞에 두다, 앞에 던지와 같은 뜻을 지닌 라틴어 동상 오비케레obicere에서 유래한다. 객체는 무엇보다도 반대다. 나에게 대립하는 것, 나를 향해 던져지고 내게 맞서는 것, 나를 거역하는 것, 내게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이다. 이것이 객체의 부정성이다. 이의 혹은 반론을 뜻하기도 하는 프랑스어 오브젝시옹에는 객체의 이런 의미 차원이 남아 있다.
세상은 갈수록 반대의 부정성을 잃어간다.
10. 시선
편집증은 오늘날의 지배적인 병이 아니다. 이 병은 타자의 부정성과 결부되어 있다. 이에 반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타자를 경험할 수 없는, 시선 없는 공간 속에 산다.
디지털 매체는 시선없는 매체라는 점에서 시각적 매체와 구별된다. 사실은 옵티콘이라고 할 수도 없는 디지털 판옵티콘 또한 시선에, 중앙원근법적 광학에 의존하지 않는다. 바로 이 때문에 디지털 판옵티콘은 아날로그 판옵티콘보다 훨씬 많이, 나아가 훨씬 더 깊이 본다. 여기서 중앙과 주변의 구별은 아무 의미가 없다.
11. 음성
음성은 더 높은 심급 혹은 초월성을 자주 대표한다. 음성은 위로부터, 전적인 타자로부터 울려 퍼진다. 나아가 음성에는 탈영토성이 깃들어 있다. 도덕적 계율의 음성은 내면 속의 바깥으로부터 온다.
디지털 소통에는 시선과 음성이 매우 부족하다. 연결과 네트워크는 시선과 음성 없이 이루어진다. 실로 관계와 만난ㅁ은 음성과 시선의 특별한 경험들이다. 그것들은 몸의 경험들이다.
디지털 매체는 탈육체화하는 작용을 한다. 디지털 매체는 음성으로부터 거칢을, 육체성을, 나아가 공동과 근육, 점막,연골의 심층을 빼았는다. 음성은 매끄러워진다. 음성은 의미를 위해 투명해지고, 완전히 기의로 변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덮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12. 타자의 언어
현재 정치와 경제는 관심을 에고로 이끈다. 이런 관심은 자기 생산에 기여한다. 그것은 점점 더 타자로부터 유리되어 에고로 흘러간다. 오늘날 우리는 관심을 둘러싸고 가차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서로에게 우리는 관심을 얻으려고 싸우는 쇼윈도들이다.
오늘날의 소통은 너라고 말하는 것, 타자를 호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너로서의 타자를 호출하는 것은 '근원적인 거리'를 전제로 한다. 이에 반해 디지털 소통은 모든 거리를 파괴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매체를 통해 타인을 최대한 가까이 내게로 끌어오고자 한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타자를 갖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는 타자를 소멸시킨다.
13. 경청하기
경청은 수동적 행동이 아니다. 특별한 능동성이 경청의 특징이다. 나는 우선 타자를 환영해야 한다. 다시 말해 타자의 다름을 긍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를 경청한다. 경청은 선사하는 것, 주는 것, 선물이다. 경청은 타자가 비로소 말을 시작하도록 돕는다. 경청은 타자의 말을 수동적으로 쫓아가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경청은 말하기에 선행한다. 경청은 타자로 하여금 비로소 말을 하게 한다. 나는 타자가 말을 하기 전에 이미 경청한다. 혹은 나는 타자가 말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경청한다. 경청은 타자를 말하기로 초대하고, 타자가 그의 다름을 드러내도록 풀어준다. 경청은 타자가 자유롭게 말하는 공명의 공간앋. 그래서 경청은 치유할 수 있다.
'좋아요'의 문화는 모든 형태의 상해와 전율을 거부한다. 그러나 모든 상해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자는 아무 것도 경험하지 못한다. 모든 깊은 경험, 모든 깊은 인식에는 상해의 부정성이 내재한다. 단순한 '좋아요'는 경험의 절대적 소멸 단계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정신을 두 가지 종류로, 즉 "상처들에 자리를 잡는 정신과 잡들에 자리를 잡는 정신"으로 나눈다. 상처는 타자가 입장하는 열린 곳이다. 극서은 또한 타자를 위해 자신을 열어놓는 귀다. 자기 안에서 완전한 안락감을 느끼고 자신을 집에 가두어 놓는 사람은 아무 것도 경청할 수 없다. 집은 에고를 타자의 침입으로부터 지켜준다. 상처는 집의 내면성, 나르시시즘적인 내면선을 찢는다. 그럼으로써 상처는 타자를 위한 열린 문이 되낟.
오늘날의 지배전략은 고통을 사유화하고, 그럼으로써 고통의 사회성을 은폐하여 고통의 사회화와 정치화를 가로막는 것에주력한다. 정치화는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으로 번역하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공적인 것이 사적인 것으로 해체된다. 공공성은 사적 공간들로 분해된다.
소란스런 피로사회는 듣지 못한다. 어쩌면 미래의 사회는 경청하고 귀 기울이는 자들의 사회라고 불릴지도 모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혀 다른 시간이 시작되게 하는 시간혁명이다. 타자의 시간을 다시 발견해야 한다. 오늘날의 시간 위기는 자기 시간의 가속화가 아니라 전면화로 인한 것이다. 타자의 시간은 가속화 압박을 낳는, 성과의 효율성 제고의 논리를 벗어난다. 신자유주의적 시간 정책은 타자의 시간을 제거한다. 이 시간 정책에게 타자의 시간은 그저 비생산적인 시간일 뿐이다. 자기 자신의 전면화는 오늘날 모든 생활 영역을 파고들어 인간의 전면적인 착취를 낳고 있는 생산의 전면화와 동시에 진행된다. 우리를 고립화하고 개별화하는 자기 시간과는 반대로 타자의 시간은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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