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T.S.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이지. 상상력이 결여된 부분을, 공허한 부분을, 무감각한 지푸라기로 메운 주제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인간들이지. 그리고 그 무감각함을, 공허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려는 인간들이지. 즉 쉽게 말하자면, 조금전 도서관의 실태를 조사하러 온 두 여성 같은 인간들이지.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정상인이든, 페미니스트든, 파시스트의 돼지든, 공산주의자든, 힌두교 신자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떤 깃발을 내걸든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아.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공허한 사람들이야."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을 일일이 진지하게 상대하다가는 몸이 열 개 있어도 모자란다는 얘기인가요?"


"그래. 맞아. 하지만 다무라 카프카군. 이것만은 기억해두는 게 좋을거야. 결국 사에케씨의 연인을 죽인 것도 그런 인간들임에 틀림없어. 상상력이 결여된 속좁은 비관용성 독불장군 같은 계급투쟁의 운동방침, 공허한 말들, 찬탈된 이상, 경직된 시스템. 내가 정말 두려운 것은 그런 것들이야. 나는 그런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증오해. 무엇이 옳고, 옳지 않은가 - 물론 그것도 매우 중요한 문제지. 그러나 그런 개별적인 판단은 혹시 잘못되었더라도 나중에 정정할 수가 있어. 잘못을 스스로 인정할 용기만 있다면, 대개의 경우가 돌이킬 수 있지. 그러나 상상력이 결여된 속좁은 것이나 관용할 줄 모르는 것은 기생충과 마찬가지거든. 중간 숙주를 바꾸고 형태를 바꾸엇 끝없이 이어져 가는 거야. 거기에는 구원이 없어.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을 여기에 들여놓고 싶지는 않아. 나는 그런 것을 적당하게 웃어넘길 수 없어."


- 무라카미 하루키저 해변의 카프카 (상)





해변의 카프카 (상/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 김춘미역
출판 : 문학사상사 2008.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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