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Kafka on the Shore' on the shore
'Kafka on the Shore' on the shore by ArkanGL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모래폭풍

어떤 경우에는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진로를 바꿔가는 국지적인 모래폭풍과 비슷하지. 너는 그 폭풍을 피하려고 도망치는 방향을 바꾼다. 그러면 폭풍도 네 도주로에 맞추듯 방향을 바꾸지. 너는 다시 또 모래폭풍을 피하려고 네 도주로에 맞추듯 방향을 바꾸지. 그러면 폭풍도 다시 네가 도망치는 방향으로 또 방향을 바꾸어 버리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마치 날이 새기 전에 죽음의 신과 얼싸안고 불길한 춤을 추듯 그런 일이 되풀이되는 거야. 왜냐하면 그 폭풍은 어딘가 먼 곳에서 찾아온, 너와 아무 관계가 없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 폭풍은 그러니깐 너 자신인 거야. 네 안에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러니까 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들어가서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눈과 귀를 틀어막고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가는 일 뿐이야. 그곳에는 어쩌면 태양도 없고 달도 없고 방향도 없고 어떤 경우에는 제대로 된 시간조차 없어. 거기에는 백골을 분쇄해놓은 것 같은 하얗고 고운 모래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고 있을 뿐이지. 그런 모래폭풍을 생각하란 말이야. 


그리고 물론 너는 실제로 그 놈으로부터 빠져나가게 될 거야. 그 맹렬한 모래폭풍으로부터. 형이상학적이고 상징적인 모래폭풍을 뚫고 나가야 하는 거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놈은 천개의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네 생살을 찢게 될 거야. 몇몇 사람들이 그래서 피를 흘리고, 너 자신도 별 수 없이 피를 흘리게 될거야. 뜨겁고 새빨간 피를 너는 두 손으로 받게 될 거야. 그것은 네피이고 다른 사람들의 피이기도 하지. 

그리고 그 모래폭풍이 그쳤을 때, 어떻게 자기가 무사히 빠져나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너는 잘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아니, 정말로 모래폭풍이 사라져버렸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게 되어 있어. 그러나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해. 그 폭풍을 빠져나온 너는 폭풍 속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네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그래, 그것이 바로 모래폭풍의 의미야. 



질이 높은 치밀한 불완전함

내가 운전하면서 자주 슈베르트를 듣는 것은 그 때문이지. 아까도 말한 것처럼 그게 대부분의 경우, 어떤 의미에서든 불완전한 연주이기 때문이지. 질이 높은 치밀한 불완전함은 인간의 의식을 자극하고 주의력을 일깨워주거든. 이것 이상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만한 완벽한 연주를 들으면서 운전을 하다간, 눈을 감고 그대로 죽어비리고 싶어질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D 장조 소나타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서 인간이 영위하는 한계를 듣게 되지. 어떤 종류의 완전함이란 불완전함의 한없는 축적이 아니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게 되는거야. 그것이 나를 격려해주거든. 내가 뭘 말하는지 알겠어?




해변의 카프카 (상/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 김춘미역
출판 : 문학사상사 2008.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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