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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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미 일을 끝낸 자신'이라는 미래적인 환상에 동화되지 않으면 '지금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신체는 그런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것도, 모터사이클의 코너를 돌 때도, '확률론적인 과정'입니다. 높은 정확도를 요구하는 일은 대개 그렇습니다. 따라서 나는 언어를 사용하는 과정도 확률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키워드가 먼저 있지만, 그것은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직 실을 꿰지 않은 바늘구멍'이나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코너'와 비슷한 종류입니다. 그것은 '아직 현재가 된적이 없음'에도 전미래적인 방식으로는 '끝난 일'이 되어 있습니다. 

시인 자신도 아직 자신이 무엇을 쓸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확률론적인 과정의 '대상'으로서 그것은 이미 글 쓰는 과정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쓰이지 않은 말에 유인이라도 당한듯 그것에 관련성이 깊은 글자나 음운이 선택받는 일이 일어납니다. 

확률론적인 것은 지향적인 미래에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대상으로서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화살이 적중함으로써 사후적으로 그곳에 대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식으로 대상은 존립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역동적인 방식으로 '확률론적'인 것은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국내도서
저자 : 우치다 다쓰루 / 김경원(KimKyoungwon)역
출판 : 원더박스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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