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까지 여러번 내 손길을 거쳐간 책. 이외에도 여러 권의 달리기 관련 책을 읽어왔다.
각각 손이 가는 때가 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재충전이 필요할 때 하루키의 이 책을 다시금 집어들게 된다. 지금까지는 주로 서울, 경기권에서만 달려봤지만 - 2009년에 시작한 달리기, 그래봤자 풀코스 6번 완주에 불과하지만 - 내 맘 한켠에는 각지에서 달려보고픈 욕망이 있다. 국내를 포함해서 여러 코스를 섭렵해보고픈 소망은 모든 달림이의 바램일 것이다. 사진으로라도 대리만족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2.
어떤 일이라도 반복하다 보면 일종의 철학이 생긴다. 하루키도 마찬가지고, 조지 쉬언의 책에서도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나도 그렇지만 건강을 위해 달리는 건 아니다. 만약 건강이 주어진다면 그건 덤일 것이고. 살아가는 방법론으로서의 달리기,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달리는 게 아닐까.
평균 10 km, 일주일에 6일 정도를 꾸준히 달리는 그의 꾸준한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양보해야하는 부분,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하는 부분도 생기겠지만 롱런이란 측면에서 하루키는 바람직한 러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 계속하는 방법에 대해서...
하루키는 장편소설을 쓰는 요령과 마찬가지라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더 쓸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히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19p).
4.
나의 경우 어떤 계기로 그 힘을 멈추거나 그 힘이 약해지면 좀처럼 다시 일으키기가 쉽지않다. 그것이 달리기에 국한되었다면 오히려 문제는 쉬울 것이다. 하루키의 표현과는 오히려 반대로, 다음 날 지장을 줄까봐 거리를 자제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나지 않아 달리고 싶은 만큼 못 달릴 뿐이다. 그건 어차피 러너 개개인의 특징일 뿐이다. 나의 문제는 달리기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짧은 경력이라 그럴지 몰라도 아직 달리기 자체로 문제를 겪지는 않았다.
결국 나에게는 납득의 문제다. 스스로가 이 상황 -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 상황 - 을 이해할 수 있느냐, 인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리고 인정이라는 행위에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까지 들어가 있기에, 간단히 그래 이건 아니다라고 해서 끝날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러너는 "이번에는 이 정도 시간으로 달리자"라고, 미리 개인적 목표를 정해 레이스에 임한다. 그 시간 안에 달릴 수 있다면, 그 또는 그녀는 '뭔가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으며, 만약 그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뭔가를 달성하지 못했다'라는 것이 된다. 만약 시간 내 달리지 못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실력을 발휘했다는 만족감이라든가, 다음 레이스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면, 또 뭔가 큰 발견 같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하나의 달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끝까지 달리고 나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혹은 프라이드와 비슷한 것)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장거리 러너에게 있어서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똑같은 경우를 일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자신이 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변명으로 간단하게 통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적당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원칙을 말하자면, 창작자에게 있어 그 동기는 자신 안에 조용히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형태나 기준을 찾아야 할 일은 아니다(25~26p).
5.
그렇다. 그러니깐 난 지금 나 스스로에게 불만이 가득한 것이다. 하루키의 표현대로 자신의 마음은 간단히 속일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 불만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소극적인 결론일지도 모른다. 물론 달리기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개선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면으로 부딪혀야 한다. 그래야 나의 달리기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고칠려고 할 것이 아니라 본래의 내 모습을 고쳐야 한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하루키의 삶은 정말 살고 싶은 삶이다. 주무대가 되는 하와이...
하와이의 하늘 알래 웃통을 벗고 런닝을 하고, 시원한 맥주와 제철 과일, 그리고 낮잠... 그렇게~
2012.08.04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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