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상용 식물과 애완동물은 원래 야생의 상태에 있었고 인간에게 예속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했었다. 그러나 인간들이 깨어나서 그들을 통제하고 복종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 의식이 인간을 동물과 식물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는 한 인간의 필요를 위해 그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지배할지를 결정하는 조직체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동물과 식물에게도 모종의 삶의 목적이 존재했겠지만 조직체가 조직되는 와중에 그들의 목적은 제거되었다.
사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자신의 목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왜 그럴까? 무엇 때문일까? 왜냐하면 목표 도달의 과정이야말로 진화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2.
살아있는 존재의 진정한 목적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아마도 서식하는 환경속에서만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조직은 그 구성요소의 목적을 자신의 이익 쪽으로 예속시킨다. 길들여졌거나 조직 안으로 정합된 동식물의 발달은 사람이 정해놓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결국 조직의 구성원들은 점점 더 세뇌되어 마침내 자신의 진정한 목적을 상실해버리고 만다.
야생 동식물의 삶은 훨씬 더 풍요롭고 의미있다. 야생사슴 떼를 예로 들어보자. 그들에게는 여러가지 걱정거리가 있다. 맹수로부터의 안전 확보, 새끼들의 양육문제, 먹이 확보, 가족 관계, 위계질서, 게다가 놀이와 삶의 즐거움도 있다.
농장이라는 조직체에 속해있는 소떼의 삶은 이보다 훨씬 비참하다. 사람은 동물에게 거주할 곳과 먹이를 보장해주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줬다. 그러나 그 대신 그들은 주인에게 자신의 목적을 내줘야 한다. 이제는 어떻게, 왜, 그리고 얼마나 살지를 주인이 결정한다. 마치 사람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3.
그러면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은 조직체를 만들어내는 한편으로 그 조직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를 멈춰버린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결국 이런 저런 상품의 생산, 판매, 구매로 귀결된다.
그 모든 구조의 꼭대기, 곧 상부조직에는 펜듈럼이 있다. 펜듈럼은 상품 자체에는 흥미가 없다. 그럼에도 조직은 매우 역동적으로 발전해간다. 왜 그럴까?
펜듈럼에게 중요한 상품은 다름 아닌 에너지다. 인간은 자신의 안락과 만족을 위해 물건을 구매한다. 그렇지 않은가? 기분 좋은 상품이 있는가하면, 그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일으키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 또한 존재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긍정적인 에너지나 부정적인 에너지가 발생한다. 이것도 다 펜듈럼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보다시피 물질적인 재화의 생산과 거래만이 전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에너지를 사고 파는 것이다.
2012.08.04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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