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각피질이 외과적 절제에도 불구하고 그 기능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은 시각기능 역시 분산부포되어 있음을 암시했고, 프리브램은 홀로그램 사진술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시각 또한 홀로그램을 닮은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각 부분 속에 전체가 담겨 있는' 홀로그램의 성질은 시각피질을 그토록 많이 제거해버려도 그 기능을 수행하는데 지장이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 확실해보였다. 만일 두뇌가 이미지를 모종의 내부적 홀로그램 매커니즘을 통해 처리한다면 아주 작은 조각의 이 홀로그램만으로도 눈에 보이는 전체상을 재생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외부세계와 두뇌의 전기적 작용 사이에 1 : 1 대응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두뇌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데 홀로그램 원리를 사용한다면 피사체의 이미지와 홀로그램 필름상의 의미없는 간섭무늬의 소용돌이 사이에 1 : 1 대응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이미지와 전기활동 간에도 1 : 1 대응관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남아있는 유일한 의문은, 그러한 내부적 홀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두뇌는 어떤 식의 파동적 현상을 이용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프리브램은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자마자 그 답을 떠올렸다. 두뇌의 신경세포인 뉴런 사이에서 일어나는 신호전달은 독립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져있었다. 뉴런은 작은 나무 같은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전기신호가 이 작은 가지들의 끝에 도달하면 그것은 마치 연못 속의 파문처럼 외부로 퍼져나간다. 뉴런들은 서로 매우 촘촘히 이웃해있으므로 퍼져나가는 전기적 파문은 - 이 또한 파동적 현상이다 - 끊임없이 서로 교차된다.
"뇌세포들을 연결하고 있는 파두 현상(wave-front nature) 속에 홀로그램이 상존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깨달을 만한 지혜가 없었을 뿐이다"라고 프리브램은 피력했다.
2.
고전과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물을 두 범주로 나눈다. 즉, 그 부분들의 배열상태가 질서가 있는 것이랑, 부분들이 무질서하거나 제멋대로 인 것들이다. 컴퓨터, 생명체들은 질서가 있다. 바닥에 쏟아진 한 줌의 콩이 만들어낸 모양이나, 폭발이 남겨놓은 잔해들, 그리고 룰렛 바퀴가 돌아가서 만들어내는 일련의 숫자 조합은 모두 질서가 없는 것들이다.
봄은 이 문제를 파고 들어가 질서에도 상이한 차원 내지 수준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훨씬 질서가 있었으며, 이것은 어쩌면 이 우주에 존재하는 질서의 차원에는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시사했다. 이로써 봄은 우리가 무질서하다고 보는 사물들이 어쩌면 전혀 무질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나 '무한히 높은 차원이라서' 우리 눈에만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것이다(흥미롭게도 수학자들은 어떤 수열의 '임의성'을 증명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수열은 불규칙한 것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단지 학문적으로 세뇌된 추측일 뿐이다).
3.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한 순간이나마 엿보고 싶다면 아이들을 바라보라고 샤인버그는 권한다. 아이들은 아직 사념의 소용돌이를 형성시킬 시간을 갖지 못했으므로 세상과 개방적으로 유연하게 상호작용하는 그들의 태도 속에 이것이 반영되어 나타난다. 샤인버그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생기발랄함은 아무런 저항을 받지않을 때 자류자재로 펼쳐지고 접히는 의식의 성질의 진수를 보여준다.
샤인버그는, 자신의 고정된 사념의 소용돌이를 인식할려면 자신이 대화중에 취하는 행동을 세심히 살펴보라고 권한다.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고 방어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새로운 정보에 접한 결과 그들의 판단을 변화시키는 일이 거의 없으며, 진정한 의미의 대화를 나눈다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의식의 흐르는 성질에 대해 열려있는 사람은 그러한 사념의 소용돌이에 의해 고착되어 있는 대인관계를 알아차리는데 더 열정적으로 나선다. 그들은 지겨운 고정관념을 끊임없이 되뇌는 것보다 대화를 통해 인간관계를 탐사하는데 더 관심이 있다. "인간의 반응과 그 반응의 분석, 그 반응에 대한 피드백으로서의 조치, 그리고 다양한 반응들간의 관계를 밝혀내는 것은 인간읭 감추어진 질서의 흐름 속에 참여하는 방식이다."라고 샤인버그는 말한다.
4.
다중인격장애의 또 다른 특이한 성질은 각 다중인격들이 서로 다른 뇌파 패턴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 현상을 연구했던 국립보건연구소의 정신의학자 프랭크 푸트남(Frank Putnam)이 지적하듯이 일반적으로 사람의 뇌파 패턴은 정서적 극한상황에서조차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격에 따라 변하는 것은 뇌파패턴 뿐만이 아니다. 혈액순환패턴, 근육의 긴장 상태, 심장박동수, 자세, 심지어 알레르기 반응조차도 다중인격자가 한 인격에서 다른 인격으로 변할 때마다 덩달아 변한다.
뇌파 패턴은 어느 단일 뉴런이나 한 그룹의 뉴런에만 국한적으로 관련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뇌의 전반적인 성질이기 때문에 이것 또한 모종의 홀로그램 매커니즘이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다중화상 홀로그램이 수십가지의 전체 장면을 저장하고 투사할 수 있는 것과 똑같이 어쩌면 두뇌의 홀로그램과 이와 비슷한 다수의 전체인격을 저장하고 불러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면, 어쩌면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 또한 홀로그램이며, 다중인격자의 두뇌가 하나의 홀로그램 자아로부터 다른 홀로그램 자아로 변신할 때 이 슬라이드 영사기의 화면바꾸기 작용이 신체 전반 뿐만 아니라 뇌파 활동 속에서 일어나는 전반적인 변화 속에도 반영되는 것인지 모른다.
5.
모든 경험은 본질적으로 단지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신경생리적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홀로그램 모델에 따르면, 우리가 감정 따위는 내부적인 현실로, 새소리나 개 짖는 소리 등은 외부적인 현실로 경험하는 이유는, 우리가 현실로 경험하는 내부의 홀로그램을 만들어낼 때 그것을 위치시키는 곳이 바로 두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이미 살펴봤듯이, 두뇌는 '외부에' 있는 것과 '내부에' 있다고 '믿는' 것을 항상 구분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것이 수족절단 수술을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환상지 현상을 경험하게 만든다. 달리 말하자면, 홀로그램식으로 작동하는 두뇌 속에서는 기억된 사물의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와 동일한 효과를 감각에 미칠 수 있는 것이다.
6.
봄은 온 우주가 비롯되는 실증적, 초공간적 존재 차원인 감추어진 질서라는 개념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자신의 견해를 비치고 있다. "모든 행위는 감추어진 질서 속의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다. 상상은 이미 어떤 형체의 창조다. 그것은 이미 의도를 지니고 있고, 그것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모든 움직임의 씨앗을 품고 있다. 그리고 상상력은 신체 등에 영향을 미쳐 감추어진 질서의 미묘한 차원으로부터 창조가 일어나 드러난 질서 속으로 펼쳐질 때 까지 자신이 그 속을 관통하여 흐르게 한다." 달리 말하면, 감추어진 질서 속에서는 두뇌자체가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상상과 현실이 본질적으로 구분 불가능하며, 그러므로 마음 속의 상상된 이미지가 신체상의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7.
무의식적 신념. 우리에게 다조나 모히티처럼 자신을 지배하는 힘이 없을 때 치유력에 접근하는 또 다른 방법은, 의식적으로 마음 속에 존재하는 두꺼운 회의와 의심의 갑옷을 우회하여 지나가는 것이다. 플라시보에 속는 것도 그 한가지 방법이다. 최면은 또 다른 방법이다.
|
'반서재 Antilibr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루 보이드,제이컵 골든버그,「틀 안에서 생각하기」- 2. 요소 분할, 나누어서 (0) | 2014.06.19 |
---|---|
드루 보이드,제이컵 골든버그,「틀 안에서 생각하기」- 1. 핵심 제거,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것 만들기 (0) | 2014.06.19 |
그렉 브레이든, 「믿음코드 31」- 우주는 무엇을 컴퓨터로 처리하는가 (0) | 2014.06.05 |
그렉 브레이든, 「믿음코드 31」- 원자들을 데이터로 생각하기 (0) | 2014.06.05 |
그렉 브레이든, 「믿음코드 31」- 크거나 작거나 컴퓨터는 항상 컴퓨터다 (0) | 2014.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