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히틀러를 비판적 정밀관찰이 필요한 정치사상가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이지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상반된 두 가지 이유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첫째로 그것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히틀러의 논리 일부가 살아남을 것이기에, 그것도 꼭 독일 사람들이나 의식적인 히틀러의 추종자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도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그의 생각에 들어있는 잘못과 더 올바른 것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히틀러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이유만으로 옳은 것이 금기시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히틀러도 2 곱하기 2는 4라고 생각했겠지만, 분명히 4가 맞다. 두번째 위험은 히틀러의 사색의 출발점이 전혀 독창적이지 않아서 더욱 커진다. 그가 독창적이지 않은 이 출발점에서 만들어낸 내용이야말로 철저히 잘못된 생각으로 입증되었지만 어쨌든 독창적이다. ..... 다만 히틀러가 생각하고 말한 모든 것이, 그가 그 것을 생각하고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논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버리는 경우의 예로서, 또 그래서는 안된다는 경고로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과 인종을 있는 그대로 현실로 다루는 사람, 또는 민족국가를 민족국가라 부르고 전쟁의 가능성을 고려하는 사람의 말을 '히틀러'라는 치명적인 이름으로 아예 가로막아 버리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히틀러가 계산을 잘못했다고 숫자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국내도서
저자 : 제바스티안 하프너(Sebastian Haffner) / 안인희역
출판 : 돌베개 2014.05.08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