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승전국에 의한 이 재판(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은 수많은 결함을 지녔다. 가장 중요한 피고가 빠졌다. 그가 지상의 모든 재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판결의 기준이 되는 법은 소급해서 적용되는 법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히틀러의 원래 범죄, 곧 폴란드와 러시아 사람들, 유대인들, 집시와 병자들에 의한 대량학살이 기소에서 부수적인 사항이 되었다는 점이다. 대량학살은 강제노동 및 추방과 더불어 '인류에 대한 범죄'로 분류되었고, '평화에 대한 범죄', 곧 전쟁 자체와 '전쟁범죄'가 핵심적인 기소내용이 되었다. 전쟁범죄란 '전쟁법과 관습법의 위반'으로 정의되었다.

 

하지만 이런 위반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양측 모두에서 이루어졌고, 전쟁 자체란 승전국도 행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죄가 있는 자가 죄가 있는 자를 심판한다고, 전쟁에서 졌다는 이유로 피고가 유죄판결을 받는 것이라고 누구든 쉽게 말할 수 있었다(영국군 사령관 몽고메리는 재판이 끝난 다음 이런 생각을 공객적으로 표현했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수많은 혼란을 야기했다. 독일 사람들, 특히 자신 안에 침잠하여 부끄러워할 이유가 가장 많은 독일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으로 죗값을 치뤘다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비난에 대해 '그럼 당신들은 안 그랬나?'라고 말하는 태도를 마련해 준 것이다. 그리고 승전국, 서방의 승전국에서, 특히 영국에서 히틀러를 위해 가장 부조리한 정당한 명제들이 터져나오게 만들었다. 35년전에 사람들의 혈관 속 피가 얼어붙게 만들었던 히틀러의 진짜 범죄를 이제 와서 힘들게 흔히 전쟁의 통상적인 더러움이라고 할 만한 것과 구분해야 하게 되었다. 히틀러의 온갖 악행들 중에서 범죄에 속하지 않는 것을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많은 독자들이 히틀러를 위해 아무 소용도 없는 변명을 한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지만, 사실은 반대로 그를 정확하게 기소하는 일이다.

 

 

 

"좋든 싫든 오늘 이 세계는 히틀러의 작품이다."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국내도서
저자 : 제바스티안 하프너(Sebastian Haffner) / 안인희역
출판 : 돌베개 201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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