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夢が勝手にかなう脳」by 苫米地英人 

 

이 책에서 그는 'A 차원'(= 추상 차원 : Abstract 차원)에 대해 자세한 설명하고 있다.

 

이 세상은 4차원(가로, 세로, 높이의 3차원 + 시간 = 4차원) 로 표시되지만(이를 '물리적 차원'이라고 한다), 이 물리적 차원 위에는  'A 차원'이 있다.

 

현대 물리학은 자연에 존재하는 것만을 그 연구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는 '마음'의 존재는 물리학의 연구 대상이 아니다.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마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리학의 정의가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마음은 확실히 거기에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다. 물리학자가 '없다'라고 하는「마음의 존재 = A 차원의 존재」를 다루는 학문이 심리학, 철학, 정보 과학이다. 그 A 차원의 학문을 물리학에 통합하여 생각하자라는 것이 토마베치 박사가 발명한 '뇌'와 '마음'을 하나로 파악한 '기능뇌과학'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세계지도를 볼 때, 2차원(평면)의 그림을 보면서 머릿속에서 완전히 3차원(입체)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다. 다른 비유를 들자면, 우리가 육안으로 보면 평면으로 보이는 물체(예를 들면, 피부 등)도 현미경으로 보면 작은 세포들이 많이 연결되어있는 것을 알 수있다. 그리고 그 작은 세포는 실제로는 입체적인 것으로, 그 입체적인 작은 세포가 붙어 생긴 물체도 우리의 육안으로 보면 단순한 평면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것이다. 즉, 차원을 떨어 뜨리면 상위 차원이 평면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들의 생활에 존재하는 물리적 차원(4차원)의 위에는 또 하나의 우리가 존재하는 물리적 차원을 조종하는 다른 차원(A차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평소 보는 4차원 세계(3차원+시간)는 상위차원의 사상(写像)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인류 개개인은 4차원에서는 별개의 인간이라도 A차원에서 보면 같은 하나의 물체의 다른 측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비유도 들고 있는데, 3차원의 물체(예를 들면 구체)가 2차원의 세계(예를 들면 종이)를 통과할 때 2차원에서 보면 그 구체 끝이 종이에 닿았을 때, 하나의 작은 점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점점 구형의 중심이 종이에 접근함에 따라 그 점은 점점 큰 원이 되어간다. 곧 구형의 중심을 지나면, 종이에 투사된 원은 반경이 최대값의 상태를 지나 다시 작은 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라진다. 이것을 인간의 삶에 대입해보면 다음과 같다. 즉, 갑자기 태어나 갑자기 죽어가는 인류라는 존재는 A차원에서 4차원 공간을 통과하여 한창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소름 끼치지 않나요? (「이상한 나라의 사각형(플랫랜드)」 라는 책에도 유사한 예를 들고 있죠). 

 

이 우주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 내용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이 우주(4차원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 상위의 차원이 A차원이라고 하면 그 A 차원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인류는 어떤 의미에서는 'A차원이라는 자신의 뇌와 마음속을 우주의 빅뱅이 통과하고 있다'고 정의할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이것을 간단히 말하면, '우리의 마음은 순식간에 우주 저편도 상상할 수 있는 까닭에, 우주보다 큰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아마도 인류가 옛날부터 감각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현대(19세기 이후~)의 '과학은 모든 것을 능가하는 상식'의 세계로 바뀐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또는 과학적으로 입증 할 수없는 것(또는 아직 입증이 되지 않은 것)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는 이 세상에서, '아니, 그것은 과학적으로 입증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가 만든 '기능뇌과학'인 것이다. 

 

그 밖에도 이 책에서 그는 여러가지를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포는 인간이 만든 환상에 불과하다. 두려움은 자신 하기 나름으로 전혀 느끼지 않게 된다'고 말하거나, '인간은 좋아하는 음식만 먹어도 건강하게 살 수있다. 운동도 하지 않는 편이 좋다'라고 주장한다(그 이유는 현대의 식생활에는 충분한 영양소가 들어 있기 때문에, 옛날 영양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시대의 상식에 따라 모든 종류의 음식을 골고루 섭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또한 운동을 하지 않아도 좋은 이유에 대해서는 원래 산소는 지구상의 생명체에게 유해했던 것을 산소를 에너지로 바꾸는 미토콘드리아와 생명체가 합쳐져 진화한 것이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와 인류이다. 즉, 산소는 원래 인류에게 유해하다. 따라서 과도한 유산소 운동을하는 선수들이 요절하는 것은 그 때문이고 반대로 요가 등 신체의 심폐 기능을 극한까지 억제하여 산소를 너무 취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장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산소 운동을 극한으로 운동을하지 않는 것이 장수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핵심은 그  자신이 이 세상, 즉 사차원 세계에서의 사명을 진심으로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항상 건강하고 있을 수 있으며, 얼마나 일을 해도 피곤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끔 사람들이 "어느 순간에 자신의 운명 사명이 직관적으로 아는 순간이 있다' 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A 차원에있는 자신의 메시지가 물리 차원에 존재하는 '말씀'을 통해 물리적 차원에 존재하는 자신에게로 전해져 온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A 차원의 존재를 '신'과 'something great' 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래서 그 '신'이 절대적이라고 말해 버리면, 그것은 일신론의 절대 하나님이되어 버리기 때문 위험하다.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간단하다. '이 세상의 살아있는 순간에 있는 인생을 진심으로 즐기고 살아 가지 않으면 아깝다. 그래서 모두가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고 그것을 해나가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한다' 는 것이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 세상(물리적 차원)은 A차원의 투영이라는 이론이지만,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순간을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고 나가는 것에 비유하자면, 그 영화를 즐기지 않거나 또는 상영 시간동안 나가서 거기서 먹고 마시고 만해서는 영화관에 발길을 옮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있는 목적은 그 눈앞의 영화를 즐기는 것에 있으며,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세상을 지배하고있는 금융자본주의사회에 세뇌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미덕', '더 많이 돈을 번 사람이 승리' 등의 '상식'에서 빨리 빠져 나와 더 큰 관점의 꿈을 가지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면 당신이 태어난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으며, 부는 따라 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영혼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영은 그가 말하는 A 차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의 '마음 · 마인드''가 우리가 현재 살고있는 물리적 차원에서, '몸'이라는 물체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전달 메시지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어떻게 추상 투명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는지에 있다. 2009 년 WBC에서 우승한 하라 감독의 경우에도 '일본 팀의 감독이라는 추상화보다는 자신의 팀과 상대 팀의 전술을 모두 부감할 수있는 또 한단계 위의 추상화에 경기가 달렸다'고. 그런 높은 추상화에 올라서면 상대의 감독이 어떤 지휘를 하거나 그로 인해 선수들이 어떤 움직임을 하거나 하는 것을 손에 있는 것처럼 알게 된다고. 그리고 또한 토마베치 박사가 상상하기로는 하라 감독의 경우는 '일본 팀의 우승'이라는 목표 이상으로 '세계에 일본 야구의 훌륭함을 전하고 야구의 인기를 세계적 수준에 올려놓고 싶다', 'WBC에서 멋진 게임을 하여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고 싶다'라는 더 높은 곳에 목표를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책에서 말한다. 

 

잘도 '당신은 자신이 있습니까?','나는 자신이 있습니다'등의 질문을 하거나 대답하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원래, '자신이 있다'라고 말하고있는 사람의 속은 미숙한 것이다. 자신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불확실한 요소가 있는 경우 자신의 마음먹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고, 자신이 분명히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입장인 경우에는, 원래 '자신이 있다'라는 관념조차도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평소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이 세상에서의 역할을 진심으로 아는 사람은 원래 '경쟁' 등의 개념없이 자신의 역할을 그저 다할뿐이다. 따라서 A 차원에서 본 자신의 이 세상에서의 역할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夢が勝手にかなう腦 (講談社BIZ)
외국도서
저자 : とまべち 英人
출판 : 講談社(강담사) 200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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