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활동이란 아미노산 배열의 헤쳐모여>
소화관은 우리의 피부가 안으로 함몰된 속이 빈 구조체이며 마치 가운데 구멍이 뚫린 어묵과도 같다. 소화관 벽은 일종의 담이며, 소화관 벽을 구성하는 세포는 서로 밀착하여 단백질이 통째로 그곳을 통과할 수 없도록 한다. 즉, 다른 개체의 정보를 보유한 단백질은 신체의 '외부'에만 머무를 수 있다. 그래서 단백질은 아미노산 단위까지 분해되고 아미노산만이 특별한 수송기구에 의해 소화관 벽을 통과해 비로소 '체내'로 들어간다.
체내로 들어간 아미노산은 혈류를 타고 온 몸의 세포로 운반된다.. 그리고 세포로 흡수되어 새로운 단백질로 재합성되며 새로운 정보 = 의미를 만들어낸다. 즉, 생명활동이란 아미노산이라는 알파벳에 의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애너그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단백질이 합성되는 한편, 세포는 자신의 단백질을 항상 분해하여 버린다. 그런데 어째서 합성과 분해를 동시에 하는 걸까? 이 물음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합성과 분해의 동적인 평형상태가 '살아있다는 것'이며 생명이란 그 균형 위에 성립되는 '효과'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합성과 분해의 평형상태를 유지해야만,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상태를 조절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다'는 말과 동의어라 할 수 있다.
지속가능성이란 항상 동적인 상태를 말한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견고하고 단단하기만 할 것 같은 거석문화는 오랜 비바람 속에 폐허가 되었지만 반복적으로 개조, 보수할 수 있는 유연한 건축물은 영속적인 도시를 만든다. 때문에 우리는 매일 음식물을 섭취해야 한다. 음식이란 에너지원이라기보다 정보원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I LOVE YOU'라는 사랑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없다. 그리고 애너그램이라는 비유도 사실 정확한 것은 아니다. 분해된 아미노산은 그 상태로 순열만 바뀌는 게 아니라 갈기갈기 흩어져 다른 개체로부터 온 아미노산과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전혀 다른 단백질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안의 특정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외부의 특정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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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전혀 무의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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