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제자라는 삶의 방식
스승을 따르는 사람은 얼마든지 틀려도 됩니다. 얼마든지 실패해도 됩니다. 이처럼 넓게 열려 있는 '패장성'이 제자라는 포지션에 주어지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견해나 기술에 '집착 없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개방성이 제자로 존재할 때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님은 '무주체적인 주체의 자각'에 공자의 창조의 비밀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는 오리지널리티가 없다. 내 말은 어떤 것이든 선현의 부정확한 복사본에 불과하다." 그렇게 자신을 규정함으로써 공자는 사유의 자유와 풍부한 창조성을 손에 넣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승을 섬기면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스승을 섬김으로써 제자는 거침없이 자유로워집니다. 횃불을 이어받는 것과 같습니다.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배우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스승을 욕망하는 법'입니다.
학자들은 보통 모르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고, 아는 부분만을 해석해서 '레비나스의 사상은 이런 것이다'하고 규정지어 버리려 합니다. 물론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습니다. 거대한 사상가를 왜소한 무언가로 축소해서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만으로, 평범한 지성은 일종의 전능감이나 만족감을 손에 넣게 됩니다.
학술의 최대 과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상태를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경험지의 축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 정해 놓은 다양한 규칙 탓에 지성의 부조화가 일어난다면 그런 규칙은 없는 편이 더 낫습니다.
학술연구도 교육도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집단이 함께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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