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언어는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한다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언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영어를 솜씨좋게 구사하게 되었다는 것은 '영어를 모어로 삼는 종족의 사고바익, 감각'을 내 몸에 새기고 각인시켰다는 것을 뜻합니다.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실리적이고, 모어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비극적이다." 어째서 비극적일까요? 그것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지적인 혁신이 모어에 의한 사고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모어가 아니라면 신조어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은 새로운 개념이나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어가 앙상하게 야위는 현상은 해당 언어집단의 지적 창조에 치명적입니다. 식민지를 통치하는 제국은 어디에서나 식민지 현지인에게 자신의 언어를 습득하도록 강요했습니다. ...... 식민지인들이 종주국의 언어를 통해 정치, 경제, 학술을 논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모어를 풍요롭게 만들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모어가 앙상하게 야위면 지적 창조의 기회도 잃어버리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역사적 현실에 대해 이야기할 때조차 종주국의 논리, 종주국의 역사관, 종주국의 세계 전략에 대해 이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국내도서
저자 : 우치다 다쓰루 / 김경원(KimKyoungwon)역
출판 : 원더박스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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