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의 반서재

 

제 1부 잠든 의식을 일깨우기

제 1장 마음의 소리

목소리가 말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말하는 것 중 어떤 것은 자신이고 어떤 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객관성을 놓친다. 당신은 목소리가 좋게 말하는 쪽이 자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것도 매한가지로 지껄이는 목소리일 뿐이다. 그것은 하는 말이 아무리 마음에 쏙 든다고 해도 그것은 당신이 아니다. 

삶의 대부분은 당신의 마음이 삶에 대해 지껄이는 말과는 전혀 상관없이 당신의 통제력을 훨씬 넘어선 힘의 흐름에 따라 전개될 것이다. 그것은 잠자리에 누워서 내일 아침에 해가 뜨게 할 건지 말 건지를 결심해야 한답시고 고민하는 것과 같다. 변하지 않는 것은, 태양은 떴다가 진다는 것이다. 언젠가 당신은 마음속의 지껄임은 다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삶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삶을 놓고 벌이는 마음의 온갖 소동이다.

내면의 목소리가 하는 말이 그토록 부질없고 의미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애당초 왜 거기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의 열쇠는 그것이 말할 때 무엇을 어떤 이유로 하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있다. 그건 풀어내야할 에너지가 속에 많이 쌓여있는 것이다 목소리가 지껄이는 것은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고, 지껄임은 그 불편한 에너지를 풀어 준다. 

내면의 목소리가 세상을 중계방송해주고 있는 것을 잘 관찰해보면 당신은 마음이 이렇게 해설해주는 덕분에 주변 세상에 대해 더 편한 느낌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ㄷ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한 순간에 당신이 보는 것은 무수히 많지만 목소리는 그 중 단 몇 가지만을 중계한다. 마음 속에서 거론되는 것들은 당신에게 중요한 것들이다. 이 미묘한 사전 처리과정을 통해 당신은 당신의 현실 경험이 마음에 잘 맞아떨어지게끔 조작할 수가 있다. 사실 당신의 의식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낸 현실의 모조품을 경험하는 것이다. 

당신이 세상을 통제하지는 못해도 마음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지껄이는 것이다. 세상을 원하는대로 바꾸지는 못해도 그것을 마음속으로 말하고 판단하고 불평하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는 있다. 이것은 당신에게 아직 힘이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그러니까 당신은 외부세계를 내부에다 재창조한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것을 그만두기로 한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에 대한 해설을 중단하고 그냥 의식적으로 그것을 관찰하기만 한다면 당신은 문이 더 활짝 열리고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개인의 진정한 성장이란 불안해하면서 보호를 요청하는 자기 안의 어떤 부분을 극복해내는 것에 관한 문제이다. 

 

제 2장 마음속 룸메이트와 결별하기

마음속에서 늘 지껄이고 있는 '나'는 결코 만족을 찾지 못한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을 때, 당신은 성장을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문제때문에 혼란스러울 때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묻지 말고 '이것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은 나의 어떤 부분일까?' 하고 물어보라. '이걸 어떻게 해야 되지?'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벌써 문제가 외부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당신은 특정 상황을 문제로 인식하게 되는 원인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문제를 느끼는 부분이 분명히 보이면 이렇게 물어보라. '이것을 보는 것은 누구일까?' 이 마음의 혼란을 누가 인식한다는 사실 자체가 당신은 그것이 아님을 뜻한다. 

세속적이라는 것은 돈이 많다거나 신분이 높은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문제의 해결책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당신은 외부의 조건을 바꾸면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외부 조건을 바구어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한 적이 없다. 언제나 그 다음 문제가 일어난다. 진정하고 유일한 해결책은 '지켜보는 의식'이 됨으로써 관점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한 미치광이와 한 방에 갇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룸메이트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내는 방법은 그것을 외부적으로 인격화시키는 것이다. 외부의 어떤 사람이 정말로 당신의 마음의 소리와 똑같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이겠는가. 마음의 소리가 하는 말을 똑같이 그대로 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하겠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신은 그에게 당장 꺼지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를 것이다. 하지만 마음 속의 친구가 끊임없이 말을 해대면 떠나라는 말조차 못한다. 

 

제 3장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외부세계가 아니다. 당신은 안에서 세상을 내다보고 있는 그다. 내부의 대상과 외부의 대상들이 서로 앞다퉈 당신의 주의를 빼앗는다. 거기서 당신은 외부의 경험과 내부의 경험을 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생각과도 주체-대상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당신은 주체이고 생각들은 그저 당신이 인식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상일 뿐이다. 당신은 생각이 아니다. 당신은 단지 생각을 인식한다. 

당신은 의식의 자리에서 살고 있다. 거기에 진정한 영적 존재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아무런 의도도 없이 살고 있다. 우리의 눈이 아무런 애도 쓰지 않고 보이는 모든 것을 내다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당신도 내면의 깊은 자리에 그윽이 앉아서 아무런 애도 쓰지 않고 모든 생각과 감정과 외부의 형상들을 내다보고 있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당신앞에 있다. 생각은 가장 가까이 안쪽에 있고 감정은 그보다 약간 떨어져 있고 형상들은 저 밖에 멀리 있다. 그 모든 것들의 배후에 당신이 있다. 당신은 언제나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의식이었다. 

 

제 4장 깨어있는 자아

경험과 일치되지 않는 의식의 대상은 더 이상 없다. 당신의 의식이 미치는 모든 곳이 영화 속의 일부다. 영화만이 생각을 통제한다. '이 영화는 재미없어. 나가야겠어'라고 말하는 '당신'은 없다. 그러려면 독립적인 생각을 해야하는데, 당신의 생각은 영화가 장악하고 있다. 이제 당신은 완전히 미아가 됐다.

끔찍하게 들리지만 이것이 바로 당신이 삶에서 당면해있는 문제이다. 생각과 감정은 광경과 소리에 장단 맞춰 움직인다. 모든 감각이 밀려들어 오고 당신의 의식은 그 속에 완전히 빠져든다. 지켜보는 자의 의식에 온전히 자리 잡고 있지 않는 한 당신은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자임을 인식하면서 느긋하게 앉아 있을 수 없다. 당신은 그것을 자신으로 오인한다. 당신은 자신이 겪어온 모든 경험의 총합을 당신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적이고 중심 잡힌 사람과 의식이 깨어있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간단히 의식의 초점의 차이이다. 의식 자체의 차이가 아니다. 의식이 안에서 중심을 잡고 있지 않으면 그것은 대상에 완전히 함몰된다. 

이 차이를 인식하고 싶다면 의식은 어떤 것에나 집중할 수 있는 마음임을 깨닫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만일 의식이 자기 자신에 집중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당신은 생각을 인식하는 대신 자신이 생각을 인식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당신은 언제나 뭔가를 의식하지만, 이번에는 의식을 의식하는 것이다.  

당신이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쇼에 너무나 넋이 빠져 버린 나머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잊어버렸던 것과도 같다. 그런데 누군가 당신을 흔들었다. 그래서 이제 당신은 자신이 소파에 앉아서 TV 를 보고 있다는 것을 다시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그 밖에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자기의 존재감을 의식의 특정한 대상에다 투사하기를 멈춘 것 뿐이다. 당신은 깨어났다. 이것이 영성이다. 이것이 참나의 본성이다. 이것이 당신이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
국내도서
저자 : 마이클 싱어(Michael A. Singer) / 이균형역
출판 : 라이팅하우스 201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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