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곧 죽을거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정말 환상적입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순서를 철저하게 따르려고 노력하게 되니깐요. 이제는 그런 절박함이 다소 수그러들었습니다. 2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기 때문인지 그때만큼의 절박함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아쉽습니다. 그런 위기감을 항상 유지하고 싶은 심정이니깐요.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접촉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삶은 멜로드라마라는 생각을 거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나는 이런 반항심을 꺾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죽음의 경계에 의식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맞설 때 활기찬 에너지를 얻으니깐요. 내 경우에는 글쓰기가 그 경계에 최대한의 관심을 쏟는 방법입니다."
- 수전 손택 Susan Sontag, 1978년 뉴욕타임스 인터뷰
화학 요법을 받던 중 그녀는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대표작 <은유로서의 질병>을 구상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질병에 관련된 온갖 공상에 대해 논박했다. 특히 환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감상적인 시심詩心 과 믿음이 아니라 치료라는 힘든 과정에 대비하기 위한 의학적인 정보와 명료하고 합리적인 사색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병원에 입원한 당시 쓴 일기에는 "나 자신의 상상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라고 고백했지만, <은유로서의 질병>에서는 그 두려움을 명료하게 분석한 후 내던져 버렸고, 상상은 우리가 질병에 부여하는 낭만적인 껍데기에 불과하며 그 자체로 폭력적이라고 파괴적인 것이라 규정했다.
2004년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 자신의 아파트를 '의학 연구소'로 바꿔 놓았다. 모두 병과 관련된 자료를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에 몰두했고, 친구들은 전화를 걸어 저명한 의사들 이름이며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논문까지 찾아 알려주는 듯 온갖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백혈병을 다룬 논문들에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하는 연구하는 학생이 되었다. 그녀는 영국 시인 위스턴 휴 오든 Wystan Hugh Auden 을 인용해 '나는 뭔가에 대해 많이 알아야 그것을 느낄 수 있다.'라는 말을 공책에 써두기도 했다.
딜런 토머스 Dylan Marlais Thomas 의 시 중에서 가장 폭넓게 사랑을 받는 시는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52년에 발표한 이 시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쓴 까닭에 죽음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죽음에 대한 영웅적인 저항을 노래한 송시頌詩 로도 여겨진다.
삶의 막바지를 향해 치닫던 어느 날, 토머스는 서턴플레이스의 펜트하우스에서 열린 파티에 갔다가 파티를 주관한 백작 부인과 충동적으로 섹스를 했다. 그때 그의 정부 라이텔은 아래층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안에서 일종의 열정이 느껴진다. 하룻저녁에 한 사람의 삶이 아니라 서너 명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사람의 열정 말이다.
'절망'이라는 단어는 최근 남용되어 진부해졌지만 원래는 무척 진지한 단어이다. 나는 지금도 이 단어를 정말 진지하게 사용한다. 절망은 사람들이 두려움이나 고뇌라 칭하는 것에 가깝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절망은 내가 왜소하고 약하며 이기적인 데다 궁극적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견디기 힘든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고 싶은 심정에 더 가깝다. 그러므로 절망은 갑판에 뛰어내리고 싶은 욕망이다."
친구 딸은 9 11 사태 때 그 근처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소녀는 아버지에게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던 날 그 건물에서 나비들이 펄럭이는 걸 보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소녀가 본 것은 나비가 아니라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모습이었다. 소녀는 자신이 그 끔찍한 참상을 봤다는 걸 아버지가 알게 되면 속상해할까 봐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다. 결국 어린아이가 부모를 보호한 셈이다. 어린 아이를 놀라게 하는 짓은 바람직하지 않다는게 일반적인 속설이지만 센닥의 믿음이 맞다면 어린아이들은 이미 겁먹고 불안에 떨며 살아가는 존재다. 아트 슈피겔만이 아무리 아들에게 세상의 밝고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해도 아이들은 이미 세상의 어두운 면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센닥 Maurice Sendak 은 자신이 아름다운 것만 그리는 동화작가이기 보다는 어린이의 진실을 말하는 작가이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대체로 놀이와 공포의 중간쯤에 존재한다. 무시무시한 두려움을 다루되 그것을 흥미진진하고 지극히 공상적인 공간에서 웃음거리로 만든다. 요컨대 그에게 두려움은 묵살하고 떨쳐내야하는 걳이 아니라 몸으로 부닥치며 마음껏 즐겨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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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는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마음을 사로잡는 뭔가를 찾겠다는 희망을 품고 능동적으로 찾아 돌아다녀야 한다. 쉽게 말하면 무엇을 훔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와인버그는 센닥의 작업 방법을 이렇게도 설명했다. "그는 한 예술가를 통째로 삼켜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가 내놓는 결과는 완전히 자기만의 것이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센닥의 그림이었지요." 그렇게 보자면 <범블 아디의 생일 파티>를 작업할 때 센닥이 삼켜버린 화가는 바로 제임스 엔소르였다.
2011년 겨울, 센닥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전기를 읽었다.
"내가 블레이크를 읽는 이유는 내가 날것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을 그에게서 어떻게든 얻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삶이 곧 일이다. 블레이크의 한마디 한마디에 내가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의 모든 장점을 빨아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센닥은 블레이크가 눈앞에서 천사를 볼 수 있는 것을 상상력의 산물이자 예술적인 성취라 여겼고, 그런 식의 발상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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