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과거란 현재이며, 그리운 것이 있다면 그건 과거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지금 그립다는 상태에 있는 것에 불과하다. 뭔가가 생생하게 기억난다면 과거가 생생한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생생한 감각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젊은 시절의 기억은 여러 번 기억을 떠올려 본 적이 있는 기억이다. 당신이 몇 번이고 떠올리고 그 때마다 아련하게 그리워했으며 동시에 조금씩 바꿔온 그 무언가이다.
그렇다면 기억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말해온 것처럼 세포의 내부는 끊임없는 변천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기억을 물질적으로 저장해두기란 곤란하다. 그렇다면 기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세포 바깥일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세포와 세포 사이에 말이다. 신경세포는 시냅스라는 연계를 만들어 결합한다. 그리고 그 결합을 통해 신경회로를 만든다.
신경회로는 경험, 조건부여, 학습, 그 밖의 다양한 자극과 응답의 결과로서 형성된다. 회로 어딘가에 자극이 전해지면 그 회로에 전기적, 화학적인 신호가 전해진다. 신호가 반복적으로 회로를 따라 흐르면 회로는 그 때마다 강화된다.
일시적으로 회로 어딘가에 자극이 입력된다. 그것은 익숙한 냄새일지도 모른다. 혹은 멜로디일지도 모른다. 작은 유리 파편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자극은 그 회로를 활동 전위의 물질 모양으로 타고 흐르며, 신경 세포에 하나하나 불을 켠다.
회로의 형태는 과거에 만들어진 것과 똑같은 성과가 되어 지금까지 잊고 있어 어두웠던 뇌 안에 강력한 빛을, 아주 짧은 순간, 발한다.
비록 각각의 신경 세포 안에 있는 단백질 분자가 합성과 분해를 거쳐 모두 바뀐다 해도 세포와 세포가 만들어내는 회로의 형태는 유지된다.
2. 시간 도둑의 정체
그렇다면 기억 분자는 분명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분자의 대사 회전과 기억 사이에는 기묘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시간에 대한 감각이다. 왜 어른이 되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일까?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해 생물학적으로 생각해보자. 이에 대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중에 '세살 짜리 어린 아이에게 1년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3분의 1인데 반해, 서른 살인 어른에게는 30분의 1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하지만 분명히 이 설명은 답이 될 수 없다.
확실히 자신 나이를 분모 자리에 놓고 1년을 생각해보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1년의 무게는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1년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우리가 시간의 경과를 '느끼는' 그 매커니즘인 것이다. 물리학적인 시간으로서 1년의 길이는 세 살 때나 서른 살 때나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른 살로서의 1년을 훨씬 더 짧게 느낀다.
애초에 우리는 시간의 경과를 어떻게 파악하는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기준으로 (혹은 분모로 삼아) 시간을 계산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앞의 설명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우리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 즉 나이를 실감하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아직 젊다'고 생각할 것이며, 10년 전에 있었던 일과 20년 전에 있었던 일의 '오래된 정도'를 구분할 수도 없다.
만약 기억을 상실했다가 어느 날 아침 다시 기억이 돌아왔다 가정해보자. 당신은 자신의 나이를 '실감'할 수 있을까? 자신이 몇 살인지는 수첩이나 달력같은 외부의 기억에 의지했을 때 인식할 수 있는 것이지, 시간에 대해 당신 내부가 느끼는 감각은 지극히 애매모호한 그 무엇일 뿐이다. 따라서 분자의 대사 회전이 늦어지면서, 그 결과 1년을 느끼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적 시간은 항상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1년이라는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은 '분모가 커지기 때문'이 아니다. 내 생명의 회전 속도가 실제 시간의 경과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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